만세를 외치다, 그날 <Viva La Vida>
하루 종일 의욕이 없고 머리가 띵하다. 오늘이 방학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일이 마지막 학기의 첫날이라서 그런 걸까?
https://youtu.be/-ZvsGmYKhcU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던 기억. 그때는 논술을 치러 갔다가 서울 대학가를 구경한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때였다. 정시 전형에 모든 것을 건 그때, 부산대학교를 함께 지원한 친구랑 합격자 발표 문자를 기다리며 캠퍼스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공동연구소동의 오른 편으로 나 있는 돌계단을 걸어내려가던 중, 이 드넓고 가파른 캠퍼스의 일원이 되었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 내가 말로만 듣던 5학년을 하게 될 줄은… 2주 전 등록금 납부 기간에 고지서 출력 버튼을 누르니, 초과학기자는 별도의 납부 기간에 납입하라는 팝업 창이 튀어나왔다. 왠지 모르게 섭섭했다. 학교가 나를 내보내려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 학교를 처음 내 세상이라 느꼈던 그날, 내가 자아실현을 하기 위한 일련의 토대를 손에 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내 인생의 탄탄대로가 이 캠퍼스로부터 펼쳐질 것 같은 막연한 기대 속에 행복했다. 그런데 그때의 감정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나의 노력 없이 얻은 결과였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 뿌듯함.
지난 8번의 ‘초과가 아닌 학기’ 동안 학교는 내게 정말 많은 것을 해줬다. 아직도 울림이 남아 있는 가르침들, 공부하기 좋은 분위기의 도서관, 학비 걱정 안 해도 되는 환경. 학교는 분명히 자아실현의 토대로서 버텨주고 있다.
하지만 인생의 탄탄대로를 향한 기대는 무너졌다. 남부럽지 않은 학교, 직장, 가정, 자식농사, 노후대비. 많은 이들이 관문이라 칭하는 것들을 대학이 보장해주리라는 믿음이 허황된 것임을 오늘의 나는 안다. 그리고 이 관문들을 통과하는 일이 행복의 열쇠라는 오래된 상식이 오늘의 내게는 와 닿지 않는다. 좋은 삶으로 향하는 여러 갈래의 문 중 하나일 뿐이고, 자신이 좋은 삶을 살고 있음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편한 방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학교를 추억으로 묻어두게 될 그날은, 너무 익숙해진 안정감과 작별을 고하는 날이 될 것이다. 그때 나는 취업 시장에 있거나, 나를 받아준 직장에서 짤릴 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어느정도 노출되어 있을 테니까. 그때부터는 학생으로서 누리던 보호와 도움 없이, 무에서 유를 창출해야 하니까. 이런 아쉬움을 달래줄, 사회로 나가는 것에 대한 기대 같은 건 그날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일은 중요한 날이다. 내일은 그날 나를 들뜨게 해 줄 뿌듯함을 수확할 수 있는, 그래도 아직 충분히 남은 기회 중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