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4대진미_돼지국밥 2022. 9. 7. 23:00

오늘 지각할 뻔했다. 몇 년만에 수강하는 9시 대면 강의. 07:30에 맞춰둔 알람이 1시간 동안 울린 뒤에야 깨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자 푹 눌러쓰고 체력 검정의 기억을 되살리며 뛰어서 도착한 강의실 시계의 시침은 9를, 분침은 12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 해 보는 대면 강의라고 밝히신, 젊은 교수님께서는 출석을 부르시지 않았다.

교수님께서는 지난 태풍과 앞으로의 연휴 때문에 진도 나가는 것이 빠듯하다는 말씀으로 짧은 OT를 마치셨다. 곧바로 시작된 수업은 예상과 달리 웹의 역사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진도 나가기 바쁜데 왜 웹의 아버지, 팀 버너스 리 이야기를 하고 계신지 의아했다. 모자를 벗는게 예의인 것 같아 맨 뒷자리 구석에 앉으니 꾸벅 졸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얼른 앞으로 할 실습에 필요한 내용을 다루셨다면, 저 사람들도 깨어있지 않았을까?

교수님께서는 HTML의 HyperText에 하필 Hyper가 붙은 이유는, Hyperlink 와 관련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링크(하이퍼링크)가 있었기에 웹이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는 말씀. 아이피 주소나 도메인을 글쓴이가 적어놓고, 독자가 그걸 복사해서 주소창에 붙여넣는 수고로움이 사라진 것이 커다란 진보였다는 말씀. 이 대목에서 잊고 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약 2년 전 유튜브 생활코딩 채널 이고잉님의 영상을 봤던 기억. 그 영상은 내가 개발자의 세계에 들어오는게 좋은 선택일지에 관해 확신을 줬지 참.

그때의 이고잉님과 지금의 교수님은 서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웹의 시작과 발전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멋진 세계에 있는 것인지. 서로 같은 두 이야기를 듣는 건데, 그때는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었고, 지금까지의 나는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게 이상했다. 내 사고 방식이나 태도가 너무 조급한 게 아닌가 싶었다.

이 세계에서 밥 벌어 먹고 살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물론, 당면한 최우선 과제이지만, 어쨌든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가 놀랍고 멋진 곳임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지난 2년간 발전하는 언어와 기술을 보며 내가 이렇게 영영 뒤쳐질 것 같아 두렵기도 했지만, 그 발전 역시 감탄할 만한 것이었다. 나보다 한참 앞서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스스로 초라함을 느꼈지만, 멋진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계에 들어올 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괜히 맥 빠지게 출첵을 건너뛰신 교수님께서는, 내가 잊고 있던 웹 세계의 경이로움을 상기시켜 주셨다. 앞으로 수업에서 새로 배울 낯선 언어들이 부담스럽기 보다는 설렘으로 다가왔다. 예전에 수학의 정석을 보고 품었던 마음. 예전에 롤 챔피언 ‘이렐리아’ 장인의 공략글을 보고 품었던 마음. 아마도, 멋진 것을 재현하고 싶은 마음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