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PC 예선을 곱씹어 보며
UCPC를 같이 나가고 방학 내내 함께 연습했던 팀원 A가 15학번이라는 이유로 리저널에 참가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지 3주가 지난 오늘이다. 그때의 황당함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팀 이름도 A의 아이디어였는데. 며칠 동안 문의를 하고 얘기를 나눈 끝에 팀원 A는 먼저 자리를 양보해주었고, 등록 마감을 이틀 앞두고 급하게 팀원 C와 함께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한 단 2번의 팀 연습, 그가 들어오기 전에 만들어진 팀 노트를 갖고 치르는 대회, 살짝 불안했다.
http://icpckorea.org/
ACM-ICPC Korea Regional Site
icpckorea.org
날씨가 유난히 맑은 오늘이었다. 선선한 바람과 푸른 하늘이 좋은 결과의 복선이기를 바라며, 영양바 한 입씩 베어 물며 컴공관으로 향했다. 5월부터 함께 연습하던 그 장소에 들어서니 문제지 및 코드 파일 출력을 위한 프린터, 현장 촬영을 위한 휴대폰 삼각대 2개가 놓여 있었다. 대회 참가를 위한 모든 준비를 해 준 팀원 B에게 고마웠다.
교내 1등으로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인 우리에게, 오늘 치르는 예선은 본선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팀원 B는 첫 문제 코드를 작성할 때 손이 떨렸다고 했는데,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최대한 차분하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읽을 몫의 문제들을 읽었다. 이것들에 당장 도전했다가는 파국을 맞겠구나 생각하면서. 조급하게 무지성 세그 박치기를 했다가 1솔에 빛바랜 결과를 맞은 최근의 대회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쉬운 문제 세 개를 먼저 풀었다. 두 문제는 팀원 B, C가 각자 풀어냈고, 나머지 한 문제는 내가 로직 정리에 약간의 도움을 줘서 팀원 B가 풀어냈다. 이때 몇 마디의 짧은 의논으로 깔끔한 풀이가 나왔을 때 우리의 웃는 표정과 들뜬 어조가, 프리즈 이후의 50분에 좋은 영향을 준 것 같다.
대회 종료 50분 전, 스코어보드(슼보)가 프리즈되었다. 슼보를 확인해 보니 우리 학교에서 참가한 7팀 중 두 팀이 우리와 같은 3솔이었다. 심장이 쫄깃쫄깃해졌다.
그 50분 동안 우리는 연습 때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의견을 나누며 문제를 풀었다. 그러다 보니 로직의 빈 틈이 늦지 않게 메워졌고, 코드를 작성하고 디버깅하는 데 평소보다 적은 시간이 걸렸다. 세 사람 다 집중력이 고점을 찍었던 것 같다. 한 문제씩 'correct'를 받을 때마다 추격을 한 발 따돌린 듯 짜릿했다.
오늘은 팀의 일원으로서 확실히 1인분 이상을 해냈다고 자신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 코드를 짜기 전에 로직을 정리하면 꽤 난이도 있는 문제의 정답 코드도 빨리 작성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하루이기도 하다. 프리즈가 된 시점에는 50분 동안 이렇게 많은 문제를 풀 줄은 몰랐으니까. 그리고, 내가 두 사람보다 알고리즘 지식이나 경험 면에선 확실히 부족하지만, 로직을 간소화하고 재빠르게 디테일을 더하는 것에 강점이 있음을 확인한 하루이기도 하다. 올해 매일같이 PS를 해 온 게 빛을 발한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반례를 잘 찾는다며 자신감을 심어주고 내가 두 문제의 정답 코드를 잘 작성해주리라 믿고 맡겨준 두 사람에게 고맙다.
비록 치열하진 않았어도 꾸준했던 지난 날들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처럼,
팀으로서 함께 호흡을 맞추고 목표를 달성하면서
보람을 느낀 것처럼,
대회가 종료되었을 때의 유쾌함이 남긴 여운으로
충만한 하루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