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4대진미_돼지국밥 2024. 4. 20. 09:19

저녁거리를 바구니에 담아 호스텔 공용 주방으로 향하는 길. 계단을 내려가면서부터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온다. 공용 주방에 들어서자 그 소리의 주인이 두 사람이었다는 점과 두 사람이서 넓은 주방을 거의 전세 내다시피 쓰고 있다는 점 중에서, 무엇에 더 놀라야 할지 갈피가 안 잡혔다.

그러던 찰나에 그 두 사람은 “여기 말고 다른 주방도 있다. 거기 가 보는 건 어때? 아니면 여기 이 테이블에서 같이 먹어도 되긴 해.“ 나는 “오, 자리를 줘서 고마워. 그런데 우리 공간을 좀 더 만들어줘.” 대신 ”오, 알려줘서 고마워. 거기 한 번 가 볼게.“ 말을 남기며 황급히 그들이 알려준 주방으로 향했다. 마치 무수한 명분들이 등 떠밀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덕분에 저녁 식사는 조용하고 편안하게 잘 마쳤다. 하지만 방으로 돌아와서는 머릿속 어느 한 구석 불편한 생각에 시달렸다. ”나 어쩌다 이렇게 의기소침해졌지? 아 맞다. 원래 의기소침한 편이었지.“

낯선 환경과 사람들. 5년 전에 혼자 왔을 때를 두고, 언어 능력과 심리적 거리감의 벽을 완전히 넘지 못해 아쉽다고 평했던 나다. 그런 내가 지금은 그 벽을 두고 아예 돌아서버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불편한 현재를 잊게 해 줄 자극을 찾으려고 유튜브를 켰다. 영상을 보던 중, 모바일로도 생기부를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상의 뒷 내용보다 나의 지난 기록이 더 궁금해져서 고등학교 생기부를 열람했다.

“다른 학생이 부탁하면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서 여러 가지 어려운 고비가 있었지만, 되도록 상대방의 기대에 맞추려고 노력하였으며,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

‘갈등관리’ 태그가 달린 이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 현재까지 관통하는 돌직구처럼 내 안에 박혔다. 언제나 나는 긁어부스럼 만드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내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일을 기꺼이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요청해도 될 법한 상황에서 나는 보상 행렬(payoff matrix)을 아래와 같이 생각해버린다.

  • 내가 요청하고 상대방이 수락하면 내 보상은 5 (단, 요청 시 수락 확률은 50%)
  • 내가 요청했는데 상대방이 거절하거나 갈등이 일어나면 내 보상은 -10
  • 내가 요청하지 않으면 내 보상은 0

거절과 갈등에 대해 지나친 거부감 내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때문일까? 상대방이 나에게 무언가를 요청했는데 내가 거절해도 될 법한 상황에서 나는 보상 행렬을 아래와 같이 생각해버린다.

  • 내가 거절하고 상대가 수긍하면 내 보상은 5 (단, 거절 시 수긍 확률은 20%)
  • 내가 거절해서 상대와 갈등 혹은 냉전 상태로 이어지면 내 보상은 -10
  • 내가 승낙하면 내 보상은 0

상대방도 나만큼 거절당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길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거절 시 상대방이 바라보는 내 이미지와 우리 관계가 부정적으로 흘러갈 가능성마저 높다고 판단하고, 거절하기를 회피하는 것이다.

“유성이. 안 바쁘면 이것 좀 알려줄 수 있나?” 분주함이 극한에 치닫았던 두어 번을 제외하고, 내 대답은 조건반사적으로 “어, 뭔데?“였다. 그게 눈에 띄었을까.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책임감과 봉사심이 뛰어나 수학을 어려워하는 친구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설명해주고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 수업시간마다 본 교사에게 큰 인상을 주는 학생이었음.”

절대 책임감과 봉사심에 친구를 돕지는 않았다. 긁어부스럼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던 일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새로운 실리를 발견했다. 친구의 머릿속 꽉 막힌 부분을 뻥 뚫어줄 때의 쾌감은 보상 행렬이고 뭐고 다 필요없이, 매우 큰 자극을 주는 경험이었다.

생기부를 보다 보니, 내가 경험한 가장 큰 동기부여가 내 의기소침한 버릇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8년 전의 나를 이렇게 회고하게 됐다. ‘그래도 나, 해야 할 때에는 정말로 열심히 했었구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분명하다” 담임선생님의 글귀가 더 이상 지난날의 기록으로만 묻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 저녁으로 오랜만에 짜파게티와 볶음김치를 먹었다. 역시 친숙한 맛이 최고다. 친숙한 경험 역시 마냥 그리워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어쩌면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

큰곰, 그리고 작은곰의 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