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페이지 철학 4/365] 실체
이 글은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최훈 지음)의 12페이지 <실체>를 읽고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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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라는 말을 처음 쓴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를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개체만이 진정한 실체라고 말했다. 이 사람 한 명, 저 개 한 마리가 그에게 실체이다. 실체를 뜻하는 그리스어 ousia는 '존재' 또는 '존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중세의 보에티우스가 이것을 '사물의 근저에 있는 어떤 것'이라는 뜻의 라틴어 substantia로 번역하면서 사물의 근원이라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견줘 보에티우스가 번역한 실체는 그런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궁극적인 어떤 것이라는 뜻을 갖는다. (12p)
이 페이지를 읽고 '실체'의 뜻이 괜히 헷갈리기 시작했다. 고대, 중세, 근대의 여러 철학자들이 정의한 '실체'가 쏟아지면서 평소에 '사건의 실체'와 같이 익숙하게 사용하던 단어가 왠지 낯설어졌다. '사건의 실체'는 '사건의 진실'과 서로 다른 뜻일까, 같은 뜻일까? 각각의 반대말을 찾아보자. 실체와 허울, 진실과 거짓? 이제야 두 사람의 '궁극'론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감이 오는 듯하다. 밤하늘에 어떤 푸른 별이 떠 있고 그 별의 겉보기 등급이 절대 등급보다 높다고 해보자. 그럼 우리 눈에 비친 저 별은 본래의 밝기 이상으로 밝게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찬란하다고 느낀 저 별의 모습이 거짓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어느 정도의 허울이 섞여 있는 모습인 것이다.
이 페이지의 뒷부분에서는 '실체'의 정의에 관한 이성론자와 경험론자의 대립이 나온다. 이 지점에서 '실체'의 실체는 더욱 모호해진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만화 <원피스>에서 '닥터 히루루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만둬라. 니들 공격 정도론 난 죽지 않아.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심장이 총알에 뚫렸을 때? ...아니.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아니. 맹독 버섯 스프를 마셨을 때? 아니야.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다! 내가 사라져도 내 꿈은 이루어진다. (...) 이어받는 자가... 있다면..." 비록 그가 사람들에게 돌팔이로 불리긴 했지만, 의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에게 생물학적 죽음은 허울일 뿐이었다. 자신의 의지가 곧 자신의 실체였고, 그것을 누군가 계승해 주기만 한다면, 자신은 살아 있는 것과 다름 없었던 것이다. 만약 철학사에 인용된다면, 닥터 히루루크는 이성론 파트에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나는 이 진술이 인간의 실체에 관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본다. '사람들과 관계 맺음, 그리고 살아 있음.' 수많은 사람들 저마다의 궁극적인 목표의 궁극적인 교집합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그동안 갖은 종류의 허울 앞에서 만족과 불만족, 갈망과 포기를 경험했다. 그런 경험 속에서 나아가거나, 멈춰서거나, 쓰러지는 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매번 새로운 상황, 사람, 그리고 나를 만나며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때마다 가슴 속에서 울려 퍼지는 드럼 소리를 듣고, 허울에 가리워진 실체를 포착할 수 있다면, 그 실체를 기꺼이 추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어떤 세상이 기다릴지 그 실체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