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페이지 철학 5/365] 화를 피하는 방법
이 글은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최훈 지음)의 13페이지 <화를 피하는 방법>을 읽고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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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쩔 수 없는 대상에 화를 내는 것은 아주 어리석다.
- 세네카 (13p)
제목의 화는 재앙을 가리키는 '길흉화복'의 화(禍)가 아니라, 머릿속을 뜨겁게 달구는 버럭이가 담당하는 화(火)다. '피하다'라는 표현을 보면 으레 전자를 떠올릴 듯해서, 오히려 본문에 나온 '다스리다'라는 표현이 제목으로 더 적절하다고 본다. 화가 나는 순간에 그것을 다스리는 일은, 화를 다스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만 하면 절반 이상 성공하는 듯하다. 결국 그 생각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문제다. 치밀어오르는 화가 너무 거대해서 그것을 통제할 필요에 대한 생각이 자리를 잃게 되면, 입에서 불을 내뿜기 시작한다. 정중한 말과 차분한 어조로는 말이 도저히 전달되지 않는 상대를 향한 것이 아닌 한, 화를 내길 잘했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내뿜은 불은 분위기를 순식간에 과열시켰다가 다시 순식간에, 그리고 더 오랫동안 냉각시킨다. 차가워진 공기 속에서 화를 냈던 자신에 대한 후회와 반성을 하게 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화(禍)를 불러일으키는 선택을 과거에 저지른 어리석었던 자신을 향해 화(火)를 내는 것은, 어째 좀처럼 자기 반성적 태도로 이어지지 않는 듯하다. 지난 선택을 후회하면서 기분이 가라앉는 것보다는, 그 선택을 한 자신을 책망하면서 활력이 샘솟는 것이 더 낫다는 무의식적 사고의 결과일까? 아니면 '꾸짖을 갈(喝)'만이 자신에게 파급력을 행사하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일까?

오늘 살면서 처음으로 입사 제안을 받았다. 체육관에서 같이 스파링하던 형님께서 갑자기 내 직업이 뭐냐고 물으셨고, 나는 개발자로 취업 준비중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분은 내 전공, 학교를 물으시더니 자바로 개발을 할 줄 아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렇다고 했고, 그분은 일단 6개월 정도 알바하는거라고 생각하면서 같이 일해보자고 하셨다. 알고 보니 그분은 스타트업 대표셨고, 내가 입사한다면 주 업무는 사업계획서 작성 및 각종 문서 관리 같은 사무 업무인데, 프로토타입 개발 또한 맡아서 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두 가지 업무를 맡을 가능성 때문인지, 생각보다 처우도 괜찮았다. 그런데 고민이 된다. 개발자로 취업할 준비에 전념하는 것의 가치와 기회 비용, 백수 딱지는 뗄 수 있지만 경력으로는 쓸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의 가치와 기회 비용 사이에서. 목적지까지 제 시간 안에 가야 하는데, 고속도로 끝 차선에서 탐탁지 않은 서행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들목이 나오고, 직진할지 옆으로 빠질지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면 지금과 같은 심정일까? 나는 화(禍)를 피하고 싶다. 훗날의 내가 오늘날의 나에게 화(火)를 내는 일 또한 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