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유 한 술 뜨는 숟가락

무엇을 골라야 잘 골랐다고 소문이 날까?

세계4대진미_돼지국밥 2024. 8. 19. 02:12

 "무엇을 골라야 잘 골랐다고 소문이 날까?" 마트에서 과자를 고를 때면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누군가로부터 듣고 난 이후부터인지, 어떤 밈을 접한 이후부터인지, 그 계기는 잘 모르겠지만 꽤 오랜 기간 동안 그랬다. 무얼 살지 고르는 순간의 선택 장애를 그런 말로 포장했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즐겨 쓰던 그 표현에는 '선택의 순간에, 나는 무엇을 많이 고려하는가?'에 관한 단서가 담겨 있다. 바로 소문이다. 선택의 결과는 나 스스로 만족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도 좋은 것이어야 한다. 내게 좋을 뿐만 아니라 남들 눈에도 좋아 보이는 선택이 어려운 경우, 나는 그 선택을 포기하거나 선택의 결과를 감추는 편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스파이 X 패밀리"의 한 장면. 개인적으로 본 받아 마땅한 태도.

 
 석달 전,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 그동안 잊고 지낸 과거 중 하나를 다시 떠올려 보게 됐다. 내가 중학생일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 어머니께 전화를 한 번 하시면서, 내가 한겨울인데도 겉옷 하나 걸치지 않고 등교하는 데 어떤 사정이 있는 거냐고 물어보셨다고 한다. 기억 났다. 그 시절에는 학교 나설 때마다 안 춥냐고, 패딩 사러 가자고 어머니께서 지겹도록 보채셨다. 하지만 나는 특유의 똥고집을 부리며 교복 자켓만 입고 등교했다. 그렇게 현관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가 잠을 확 깨워줬다. 도로로 나서면 칼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귀를 얼게 했다. 그런데 나는 그때 정말로 안 추웠다. 지금 견딜 만하니 이건 추위가 아니라 잠깐의 불편일 뿐이라 여겼다. 어차피 20분 안에 뜨끈한 교실에 도착하니까. 다만 외로웠다. 등교길에 겉옷을 걸치지 않은 사람이 나 말고도 있는지 살펴보곤 했는데, 그런 사람이 보이는 날은 드물었다. 무엇 하나도 밖에 걸쳐지지 않은 교복은 소속감의 상징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나만 벌거벗은 듯한 느낌을 줬다. 그럼에도 겉옷을 받쳐 입지 않은 것은 그게 그나마 차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노스페이스처럼 이름난 브랜드의 패딩을 입고 있었다. 충분히 따뜻하고 만듬새 있는 노브랜드 패딩을 입은 학생들도 가뭄에 콩 나듯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내 눈에 그들의 패딩은 왠지 초라해보였다. 내가 부모님께 "사달라!" 말할 수 있는 패딩 또한 그러했고, 만약 그걸 구매한다면 그건 무가치한 낭비였다. 어차피 그걸 입어도 외롭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계기는 분명히, 어느 선명한 기억에서 시작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의 꼬드김에 처음으로 다니게 된 종합 학원에서의 일이었다. 국어 수업이 끝나기 5분 전, 선생님께서는 가벼운 잡담을 시작하셨고 어쩌다가 운동화 브랜드 이야기가 나왔다. 하나 둘, 자기가 무슨 운동화를 신고 있는지 말을 했다. 대화에 끼지 못하고 있는 내가 신경이 쓰이셨는지, 국어 선생님은 내 운동화는 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대답을 못하고 다만 의자에 앉은 채 애꿎은 발만 뒤로 말아올릴 뿐이었다. 야속하게도 내 뒷자리는 비어 있지 않았고, 거기 앉은 친구가 내 운동화 발꿈치 부분에 적힌 낯선 문자들을 더듬어 가며 대변해줬다. "그게 뭐지?" 하는 반응과 오가는 말들. 선생님께서는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피며 싸해진 분위기를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셨고, "나댄다"라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었던 개구쟁이는 그때 이후로 영영 숨어버리고 말았다.
 
 그날부터 똑같은 대참사가 다시 일어날까 노심초사하며 지냈고, 그러다 보니 패딩 고르기를 포기했던 것이다. 운동화 대참사 당시 상황을 덜 참담하게 볼 여지는 있었다. "나는 브랜드에 별 관심이 없고, 쓸만하기만 하면 돼. 그렇게 부모님의 지출을 줄이고 용돈을 더 받아서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잖아." 하지만 그 얘기를 그 자리에서 친구들에게 할 깜냥도 없었거니와, 생각이 거기에 이를 만큼 내 사고 방식은 깊지도, 그렇다고 밝지도 않았다. 다만 이런 후회를 하며 이불킥을 할 뿐이었다. "아, 내가 그때 좀 더 유쾌하게 직접 운동화가 뭔지 이야기했다면 분위기가 오히려 괜찮았을 텐데." 당시 우리 집은 내가 느끼기에 딱히 부족할 것 없는 경제적 형편이었지만, 사는 동네에 비해서는 뒤쳐지는 편이었다. 나는 뒤쳐진 신발이 친구들에게 주목받은 그날에, 왠지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어두운 생각으로 이어졌다. "내가 친구들보다 후달리는구나, 급이 떨어지는구나." 경제적 형편의 차이를 인격의 차이로 확대 해석해버린 나는, 최대한 머니 게임을 피하기 시작했다. 괜히 서로의 경제적 지위를 비교하게 되는 상황을 말이다.
 
 그래도 신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시는 것일까? 머니 게임을 일찌감치 포기한 나는, 공부 게임에서 나름대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 유행하기 시작하던 카카오톡은 상상 속의 세계로 두고, 유행하던 게임들은 쉬는 시간에 친구 폰으로 두어 번 맛만 보면서, 학교에서의 모든 시간을 공부에 쏟았다. 그 결과 우리 지역 어른들은 최고의 대학 중 하나로 평가해주는 국립대를 선택할 기회를 얻고 기세 좋게 합격했다. 부모님께서 정말 많이 기뻐해주셨다. 명절에 만난 친척들은 입을 모아 잘 했다고 말씀해주셨고, 부모님은 당신의 친구들에게서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여기저기 소문낼 만한 결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소문났을 때 부끄럽지 않은 결과구나. 지난 3년간의 절제를 두고 보람을 느낀 동시에, 안심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꽃이 하나둘 피어오르는 경험이 낯설었던 탓일까, 아무런 자정 작용 없이 머릿속은 온통 꽃밭이 되어버렸던 것 같다. 현실적인 준비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이상만 높은 철부지로 3년을 보냈다. 대학 전부터 교수직을 바랐지만, 거기까지 가는 데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접어두었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우는 한국은행에 가면 좋겠다 생각해서 오픈 카톡방에 들어가 눈팅을 하고, 정석으로 통하는 K대 교재를 해당 대학 근처 복사집에 연락해서 배송 받아 놓고선, 수학의정석 집합 단원만큼도 공부하지 않았다. 다른 금융 공기업 A매치든 B매치든, 가기만 하면 충분히 소문날 만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길 가기 위해 피땀 흘려 공부하는 동기들을 지켜보기만 하고 나는 뛰어들지 않았다. 가오는 살지만, 돈은 많이 받지만,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품은 채 최소 1~2년이나 준비할 각오까지는 없었다.
 
 한 달쯤 전, 일과 행복의 융합이 가능할 것이라 판단하고 준비한, 개발자로서의 커리어가 시작됐다. 지금 다니고 있는 첫 직장은 주관적으로 볼 때 내게 과분한 곳이다. 내가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게끔, 내 능력의 200%가 아니라 110%만큼을 요구하는 과제를 줘서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게끔, 내가 일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게끔 배려해주신다. 아직까지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 지인들에게 취업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들 눈에 별로 좋지 않은 직장으로 보일 것이라는 짐작 때문이다. "대학 잘 갔다" 소리 듣던 때와 정반대로, "회사 잘 갔다" 소리는 좀처럼 나올 수 없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처음 들어본 회사 이름, 낮은 연봉, 적은 직원 수는 일반적으로 좋은 회사상과 상반된다. 커리어 측면에서 원치 않았던 직무, 사수 없는 환경, 협업 없는 솔플은 신입에게 이상적인 회사상과 상반된다. 내가 아무리 주관적인 만족도를 어필해도, 이런 점들을 지워보기 위한 몸부림으로 치부될 것 같다. "개발자 되겠다고 졸업도 늦게 하고 싸핀지 뭔지 한다고 1년 더 쓰더니 겨우 저 돈 받는 거야?" 혹은 "싸피 1학기 때는 상 많이 받길래 좋은 데 가려나 했는데 취업은 잘 못 했네..."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하고, 그게 표정에서 드러나면, 견디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일단은 정말 일부 사람들에게만 취업 소식을 공유했다. 비록 아무도 모르는 회사에서,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환경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에게만. 그리고 기꺼이 그걸 들여다 봐주리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만. 나는 행복한 채로 성장하는 길을, 지금처럼 계속 걸어갈 것이다. 아직 길의 끝에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이 선택이 잘 한 것인지 아닌지 따지는 일은 성급한 낭비다. 삶의 도처에는 머니 게임, 공부 게임뿐만 아니라 건강 게임, 행복 게임, 소통 게임 등 다양한 게임이 있고 매번 다른 게임에서 다른 과정과 결과를 만나지 않던가.
 
 대개 진학, 취업, 결혼, 자식 교육, 노후 준비 같은 것들은 통과 의례로 여겨진다. 그리고 '얼마나 잘 꾸며진 관문을 통과하는가'를 바탕으로 평가하는 것이 관례인 듯하다. 누가 봐도 예쁘고 멋진 관문을 통과하면 좋은 평가, 좋은 소문이 따라오는. 과연 그게 전부가 될 수 있을까? 관문을 지나는 건 정말 찰나의 순간일 뿐인데. 다른 모든 시간은 어떤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다시 방문을 열고 나오기까지 만나는, 방 안에서의 순간들일 것이다. 그 순간들은 감히 예측할 수도 없고, 그러므로 앞서 평가할 수도 없다. '좋은 문'이 무언가 좋은 걸 보장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곳이 '좋은 방'일 가능성을 높여주기만 한다. 그 문이 닫혔다고 해서 좋은 미래가 가로막히는 것은 분명 아닐 테다. 앞으로 나는 '좋은 시간을 얻기 위해 누구나 좋다고 말하는 문을 선택하는 것'에 골몰하기 보다는 '어떤 문을 선택하든 간에 좋은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소문이 나겠지. 삶의 방식과 태도를 잘 골랐다고. 좋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좋은 삶을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아래 글은 5년 전, 대학교 2학년이던 내가 글쓰기 교양 수업 때 작성한 글이다. 이 글을 5년 전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보낸 메시지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근거 하나 없는 이 메시지에 증거를 직접 더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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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칸 안에 자신을 욱여넣는 청년들

2016***** 경제학부 2학년 황유성

 

 며칠 전 수능이 치러졌고, 매년 그랬듯 그날에는 한파가 찾아왔다. 수험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적자생존의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나름의 열정을 불태우며 달려왔을 터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또 다른 겨울일 뿐이다. 한때 출제자가 의도한 ‘정답 맞히기’ 전문가였던 청년들은, 이제 기업이 요구하는 ‘정답 되기’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비평문 「자소서는 어떻게 ‘자소설’이 되는가」(문강형준)가 지적했듯, 기업의 인재상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대학생활을 보내는 것이다. 기업은 ‘인간상’ 뿐만 아니라 ‘능력’까지 요구한다. 취업 잘 했다 소리 들으려고 몇 년을 공들여 필기와 면접, 발표, 토론 등 다양한 시험을 준비한다. 빈칸 한 줄 채워보자고 스펙을 만들고, 단칸방에서 지내며 김밥 한 줄로 배를 채운다. 대체 왜 청년들은 또 다른 수험생활을 계속하는가?

 대한민국 청년들 앞에는 표준화된 경로가 존재한다.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사회적 잣대로 점철된 보편적인 길 말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부모를 만나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 자식 교육, 노후 설계까지 완벽하다면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라고 평가받는다. 가정사적 배경을 제외한 모든 게 생애별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로 여겨진다. 적절한 시기에 우수한 성적으로 각각의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매 시기의 목표다. 이러한 경로는 경제개발을 위해 지어진 경부고속도로처럼 사회의 효율성을 끌어올린다.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에서 간편하고 신속하게 인재선발을 하기 위해 수능과 공채 절차가 만들어졌다. 또한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쉽고 빠르게 판단하려고 다양한 외적인 기준들이 통용되었다. 그리고 청년들은 보기 좋게 고속도로로 몰려, 막차 난간을 붙잡고 끌려가고서라도 종착지인 서울에 제때 도착하고자 한다.

 사회가 닦아놓은 단 하나의 길로 청년들이 쏠리는 것은 서울에 가는 것, 경부고속도로를 타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상을 주입받기 때문이다. 연필 쥐기도 불편한 어린 시절부터 ‘거지꼴 당하기 싫으면 공부해라’는 잔소리를 듣는다. 그 이후로 해는 바뀌는데 명절마다 듣게 되는 ‘출세’에 관한 덕담과 충고는 전혀 바뀌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 입시’라는 수요를 만족시키고자 학교는 모든 가용한 자원을 획일화된 커리큘럼에 쏟아붓고 학생들의 참여를 강제한다. 싫은 소리 한 번 내봐도 돌아오는 말은 대개 뻔하다. “대학에 못 가면 낙오자가 되는 거다. 근데 일단 대학에만 가면 다 할 수 있다.” 이런 외압을 못 이겨 공부만 하던 청소년들은 어느새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유일하게 안전하고 빠른 길이라고 믿게 된다. 그런 믿음이 가치관으로, 수험생활이 삶의 방식으로 고착되면서 청소년은 청년으로 성장한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청년들에게 없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주체적인 선택이다. 그들의 각 생애에 위치한 목적의식은 집단의 합리와 논리로 설정된 사회의 목표를 여과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N포 세대’라는 말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 건 그것이 기회비용이 아니라 일종의 박탈이기 때문이다. 청년이 주관을 따라 선택을 하고, 그것을 이행하면서 다른 가치들을 포기했다면 그만치 힘이 빠지지는 않았을 테다. 청년은 무기력에서 벗어나 사회 속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무한경쟁사회는 사람들이 경합적인 길로 몰려서 나타난 현상이며, 자신이 하필 정체가 심한 고속도로로 내몰린 건 사회적 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스스로 내린 선택의 부재 때문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사회가 설정한 통과의례를 마주할 때마다, 자신을 억제하면 ‘성공’이라는 틀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뒤처지지 않고 도착한 서울에서 ‘착실한 일꾼’이라는 훈장을 받으면 꽤 보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렸을 적 꿈이 ‘SCV’인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표준은 정답과는 다른 말이다. 그리고 외적인 요인이 자신의 삶을 결정지었다는 말은 너무 효율적인 단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