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만에 쓰는 자전거 국토종주 후기
잼민이 시절에 주말이면 가족들 다같이 사직운동장으로 가서 자전거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곤 했다. 거기서 네발 자전거로 시작해서, 어느 순간에는 보조 바퀴를 떼기 시작했고, 그때 당시 기어 자전거라고 불리며 내 체격에 비해 다소 큰 자전거를 타곤 했다. 자전거를 바꿀 때마다 더 짜릿한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군대 때 가게 된 첫 훈련에서부터 나는 '자전거 = 자유'라는 막연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양평 근처에서 탱크가 강을 건너는 훈련이었는데, 훈련장 바로 옆으로 자전거길이 나 있었다. 당시 소대에서 막내였던 나는 이른바 조뺑이를 치고 있었는데, 허리가 아파서 잠깐 기지개를 키던 찰나에 자전거길 위로 몇 대의 자전거가 쌩 달리며 지나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 타고 시원하게 달리던 그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고, 전역하면 나도 그 느낌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전역 이후에 여행지의 자전거 대여점에서, 아니면 간간히 온천천 무료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타곤 했는데, 매번 즐거웠다.
5월 초에 자전거 국토종주를 계획중인 지인의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처음 자전거 국토종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삘이 강렬하게 꽂혔던 나머지 온갖 관련 유튜브와 블로그를 보면서, 빠른 시일 내에 나도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내 자전거를 가지게 되었다.
5월 19일
안녕 토마스, 아니 도마스 자전거

가성비 GOAT 자전거라는 후기글이 많아서 구입했다. 본래 옷도 무난한 색을 선호하는 편인데, 노란색으로 확 튀는 이 자전거는 느낌이 마치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범블비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밝은 색이라서 프레임의 오염 상태도 한눈에 보이고, 도로 위의 운전자 눈에도 잘 보여서 더 좋다고 생각했다. 이 자전거를 처음 받은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외할머니께서 "자전거 반품 안 되나? 취업을 해서 차를 살 생각을 해야지, 뭐 할려고 자전거를 사. 차라리 반품하고 차를 사. 돈 모자라면 이 할미가 돈 보태줄게." 묵직한 팩트를 맞고 흐르려는 눈물을 참고, 하려던 얘기를 전하지 못하고, 자전거 출정식을 하러 갔다. "이 자전거 30만원도 안 하는 건데 돈 얼마나 보태주게?"라는 말 따위 꺼낼 수도 없는 백수라서 울컥했다. 시작부터 완전 산통 다 깼네.

맑은 날의 온천천과 수영강 자전거길을 '내 자전거'로 달리니 기분이 나아졌다. 국토종주 가기 전에 자전거를 오래 타는 연습을 해 둬야 한다는 후기글을 많이 봐서 이때 이후로도 자주 자전거를 탔다.
6월 2일
인천으로 출발~!

국토종주 코스는 인천에서 출발해서 부산에 도착하는 방향으로 선택했다. 자전거와 함께 이용 가능한 교통 수단은 고속 버스뿐이었는데, 인천-부산 이라는 거리를 종주가 끝나고 버스로 이동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스를 타면 탈수록 부산에 가까워진다는 의미가 집이 가까워진다는 의미로 곧바로 와 닿는 게 힘이 많이 될 것 같았다. 기간은 가장 레퍼런스가 많은 4박 5일로 잡았다.

처음으로 타본 프리미엄 고속버스. 운 좋게 차량의 짐칸에 여유가 많아서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자전거를 실을 수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고속버스를 만날 때까지 차표를 사고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그건 상상만 해도...

인천에 도착해서 자전거 상태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어 보인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차도를 이용해야 했다. 인천 시내는 처음이었고, 차도를 이용한 경험이 많이 없던 탓에 자전거 교통 법규도 익숙치 않아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라이딩이었다. 숙소에 도착하기 직전에 스마트폰 거치대와 핸들 바를 결합시키는 나사가 헐거워진 나머지 빠져버렸고,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져 액정 보호 필름이 깨졌다. 이때부터 경각심이 생겨서 자전거를 타기 전에 자전거에 결합된 장비의 연결을 체크했다.
6월 3일
인천에서 양평까지

서울쪽 오면 늘 점심 메뉴로 육쌈냉면이 떠오른다. 첫날인 만큼 든든하게 배 채우고 시작했다. 날이 쨍하니 더웠는데, 맛이 시원시원하니 좋았다.

출발점인 아라 서해갑문 인증센터에 도착해서 국토종주 인증수첩을 발급받았다.

출발선이 꽤 웅장하게 꾸며져 있어서 사진을 안 찍을 수 없었다.

서울에 진입하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다. 서울에 저런 멋진 산도 있었구나. 무슨 산인지는 모르겠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보며 서울에 온 걸 실감했다.

한강 여의도공원 근처 편의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국룰로 정했다. 탁 트인 경치를 보며 마시는 국물맛이 참 좋았다.

이게 아마 잠실대교 위였던가. 대낮에 보는 사우론의 탑은 창문이 아주 매끈하게 잘 닦인 느낌이었다.

서울에서 빠져나갈 때즈음 찍은 사진이다. 햇살에 비친 먼지 같은 게 다 하루살이들이다. 근처에 숲이나 물가가 있으면 날벌레가 많이 꼬였다. 이 다음에 아이유 3단 고개라고 불리는 3단 업힐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유의 "좋은 날"을 한 곡 다 듣기도 전에 끝날 것 같은, 극히 짧은 구간이었다.

뜻밖에 야간 라이딩을 하게 되었다. 사진은 하늘이 밝게 나왔지만, 실제로는 어두워서 라이트를 키고 자전거를 타야 했다. 불빛에 이끌린 날벌레들이 별처럼 쏟아졌고, 내 고글에 들이받으면서 나는 타다닥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6월 4일
양평에서 충주 수안보까지

양평 시내의 숙소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 사진에 나오는 뒷산 어딘가에 신병 교육대가 있었다. 거기서는 양평 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저녁무렵이면 시내의 가장 높은 빌딩에서 불빛 두어 개가 깜빡였다. 그걸 볼 때면 사회에 대한 그리움이 막연히 생겨나곤 했다. 지금은 똑같은 빌딩을 보며, 그리고 외박을 나오면 놀러다녔던 저 시내를 보며, 묘한 애틋함을 느끼고 있구나. 하는 감상에 빠져 있다 보니 해가 중천이었다. 늦었다.

양평에서 이포보 가는 길에 만난 한적한 자전거길. 내가 상상한 국토종주 자전거길에 가장 가까운 풍경이었다.

여주보에서 강천보 가는 길. 괜히 여주 평야가 유명한 게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산이 멀리 있고 평평한 땅이 드넓었다.

강천보에서 비내섬 가는 길. 놀랍게도 강원도였다.

비내섬 인증센터 근처의 어느

카페에서 파는 매실 에이드의 맛이 정말 좋았다. 여기서 남은 시간과 내 평균 속도를 계산해서 숙소를 골라 예약했다.

계산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어두운 밤이었다. 다행히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아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다. 다만 멈추면 모기까지 달라붙기 때문에 계속 달려야만 했다.

수안보 도착하면 맛있는거 먹을 기대를 하고 도착했는데, 저녁 10시 무렵이었음에도 문을 연 식당이 없었다. 네이버 지도에는 다 영업중이라고 돼 있었는데, 온천욕으로 유명한 지역으로 여름은 비수기라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도 숙소에 비비큐 가맹점이 딸려 있길래 음식을 양껏 주문했다. 로봇이 방문 앞까지 와서 서빙해주는 게 신기했다. 음식 본연의 맛이 좋았고, 점심 때 먹은 육개장 사발면이 오늘 끼니의 전부였던 터라 싹 다 비울 수 있었다.
6월 5일
충주 수안보에서 경북 의성까지

부모님 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메뉴로 유명한 이 지역의 식당에서 한 끼를 못 해 보고 가면 아쉬울 것 같아서 아침을 사 먹었다. 역시 비수기인 탓에 오전 9시가 넘은 시간이었음에도 영업을 하는 식당이 없어서 동네 한 바퀴 돌다가 찾은 식당에서 순두부 찌개를 먹었다. 담백하고 심심했다. 오늘 빡센 언덕 두 개를 넘어야 했기에 영양을 생각하며 싹 다 비웠다.

소조령과 이화령 모두 사진 속 언덕의 경사도에서 큰 편차 없이 유지되는 느낌이었다. 다만 경사 구간의 길이가 문제였다. 소조령은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오를 만 했는데, 이화령은 초심자인 나로서는 끌바를 할 수밖에 없었다.

끝날듯 끝나지 않던 이화령 고개를 넘고 나니 만난 뷰. 어제까지 우리 강의 아름다움을 감상했다면 오늘은 우리 산의 차례였다. 왜 국토종주 자전거길이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즐길 수 있다고들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온음료를 보충하러 들어간 매점에서 팔던 청포도 스무디. 이번 여정에서 마신 것들 중 최고의 맛이었다.

저 터널을 기점으로 충청도와 경상도가 나뉜다고 한다. 벌써 경상도라니, 집이 가까워져 오는 듯해서 좋았다.

낙단보 근처의 어느 한식뷔페에서 밥을 푸짐하게 먹었다. 한식뷔페라기 보다는 자율배식하는 기사식당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래도 꿀맛이었다.

자전거 보관까지 가능한 숙소를 찾는 게 쉽지 않다 보니, 무인텔에서의 1박이라는 경험도 살면서 처음으로 해 봤다.
6월 6일
경북 의성에서 경남 합천까지

경상도라고 해서 그리 가까워진 건 아니구나 하는 걸 깨닫게 해주는 표지판이었다. 그저 하루빨리 낙동강하굿둑까지 남은 거리가 두 자릿수로 떨어지기만을 바랐다.

칠곡보에서 강정고령보 가는 길. 강 위에 만들어진 자전거길이었는데, 노면의 상태가 좋아서 달리는 맛이 좋았다.

달성보에서 합천창녕보 가는 길. 저 구간은 대체로 짧지만, 길의 굴곡이 상하좌우로 다이나믹했다. 15도 넘는 급경사를 몇 번 만나서 다 끌바를 했다.

합천창녕보에서 숙소가 있는 적교장으로 가는 길. 해질 무렵의 오렌지빛 하늘은 빨리 달려야 야간 라이딩을 피할 수 있다는 걸 뜻하지만, 사진에 담고 싶었던 풍경이다.

이 근방에 사는 분들 중 암벽등반가가 있다면 저길 연습처로 많이 삼을 듯하다.

적교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뜻밖에 외국인 투숙객이 많아서 남는 방이 없었다. 그런데 다른 숙소로 가려면 수십 킬로는 더 가야 하는데 이미 깜깜한 저녁인데, 가로등은 거의 없고 자전거 전조등은 수안보에서 출발할 때 호텔방에 깜빡 두고 온 터였다. 참 난감하던 차에 주인 분께서 직원용 숙소 같은 곳에 재워주셨다. 감사함과 안도감과 함께 근처 식당에서 먹는 돈까스는 정말 풍요로웠다.
6월 7일
경남 합천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오늘은 4박 5일 여정의 마지막날이기도 하고, 주행 거리가 가장 길기도 하고, 종주 인증을 받으려면 영업 종료 시간인 5시 30분까지 을숙도에 도착해야 해서 오전 6시에 길을 나섰다. 아직 해가 낮게 떠서 그리 덥지도 않고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길 위에 차가 없고 사람도 없고 자전거도 없어서 가장 한적했던 길이다.

이화령 고개와 함께 악명 높은 업힐로 손꼽히는 박진고개. 해가 점점 높아지면서 햇빛을 견디며 오르기가 버거웠다. 끌바가 나를 선택했다. 오르는 길에 도로 외벽을 가득 채운 낙서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번 국토종주에서 만난 업힐 중 가장 파멸적인 경사도를 자랑하는 영아지고개. 정말 딱 보자마자 어이를 상실했다. 이번에도 끌바의 선택을 받고 오르는 길에 본 표지판에는 대충 20을 훌쩍 넘기는 경사도가 적혀 있었다.

창녕함안보에서 양산 물문화회관으로 가는 길에 차도를 지나는 오르막 구간이 있었다. 서둘러 오르느라 급하게 기어변속을 하다가 뚜두둑 뭔가 튿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페달을 아무리 밟아도 헛돌기만 했다. 바로 옆에 차들이 쌩 하고 지나고 있던 터라 심장이 움찔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고 체인이 빠진 거라, 유튜브에서 내가 해당하는 케이스의 해결법을 찾아서 잘 조치할 수 있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포토스팟 중 하나. 한 폭의 액자 모형이다.

양산 물문화회관 인증센터에서 조금 가니 반가운 이름이 보였다. 부산 지하철 노선도에서만 보던 그 이름. 2호선의 종착지 호포. 이젠 정말 끝이 임박했구나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는 사람들만 자전거를 타고 내려갈 수 있는 즉사 코스. 자전거를 끌고 내려가는데도 상당한 가속력이 붙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도착하는 순간을 상상할 때에는 엄청난 감동이 물밀듯 밀려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인천의 출발지점에 비해 부산의 도착지점이 덜 꾸며진 것처럼 보여서 그런 걸까. 아무튼 종주를 끝낸 것에 대한 후련함보다는 퇴근 시간에 차도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것에 대한 염려가 더 컸다.
8월 초
국토종주 인증서 수령

국토종주를 끝낸 그날에는 인증서 수령까지 한 달 넘게 걸릴 수 있다는 말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두 달 뒤에 왔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긴 길었다. 기억이 어느정도 희석된 탓일까? 인증서를 받고 나니 감회가 새롭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9월 8일 오늘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가 동력으로 여정을 마치고 석 달이 지난 오늘
올해 들어서 나는 마치 방전된 사람처럼, 그저 흘러가는 대로 흐느적거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과거의 나에서 정체되어 있는 현재를, 바쁘게 발전하는 사회에 견주면 도태되고 있는 흐름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걸 바꿔나갈 의지도, 의욕도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국토를 종주한다는 기획은,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마련한 탈출구였다.
그런데 나는 그토록 바랐던 자전거를 타는 와중에도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었다. 이따금씩 "남들은 이미 취업했거나 취준하고 있는데, 백수 주제에 국토종주 하고 싶다고 며칠씩이나 통째로 놀 자격이 있는 건가?" 라는 물음이 머리를 때렸다. 그런 나 자신이 한심하다 느껴질 즈음이면, 페달을 있는 힘껏 밟고는 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결여된 자신감이니 자격이니 하는 문제는 자취를 감추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내가 직면하는 전부였다. 그럴 때 비로소 해방감 비슷한 걸 느꼈다.
633km의 자전거 국토종주. 전반적으로 지독하게 지루한 여정이었다. 두 눈을 자극하는 풍경을 만끽하는 순간은 짧은 시간이었고, 그럴 때 귀를 즐겁게 하려고 듣던 노래의 효험은 오래 가지 못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두 무릎에서 느껴지는 저릿함, 손잡이를 고쳐 잡지 않으면 두 손에서 느껴지는 찌릿함은 그 지루함을 더욱 견디기 싫은 것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싫증이 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속에서 즐길 거리를 만들었다. 평균 속도 올리기라던지, 최고 속도 올리기라던지, 영화 "기생충"에 나온 송강호와 같은 편안한 승차감의 운전이라던지. 그러고 나면 총 거리가 얼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127km라는 오늘 하루의 몫을 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오늘 조금 덜했으면 내일 더하면 되고.
며칠 전 회사 대표님과 사담을 나누다가 자전거 이야기가 나왔고, 내가 올해 한 국토종주 이야기를 했다. 대표님께서도 그걸 하고 싶으셨는데 일 때문에 며칠 씩이나 시간을 낼 수는 없어서 못하고 있으시다고, 부럽다고 하셨다. 그리고 작은 칭찬을 덧붙이셨다. 그걸 도전할 생각을 하고, 실천하고, 완수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도전과 노력 끝에 다가오는 보상, 그리고 거기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 높은 가치를 두는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종주를 막 끝낸 시점의 나는 그 길 위에 아무런 깨달음이 없었다고 여겼다. 그러다 대표님의 말씀을 듣고 국토종주를 하던 때의 나를 돌아봤다. 자세히 보니 거기에 온갖 깨달음의 여지가 산재해 있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라는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 '인천에서 부산까지 간다'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 속에서 '나의 느낀점'와 '느낀점에 대한 나의 대응'은 간단명료하게 드러난다. 온갖 모호한 활동과 복잡다단한 과제들로 점철된 일상에 비해서, 나에 관한 발견을 하기 유리한 환경인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제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라는 걸 이해하기 쉽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