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주는 여흥을 담는 찻잔

나 또한 무럭무럭 자라서 <나무>

세계4대진미_돼지국밥 2021. 8. 8. 20:02

같은 학과 후배가 추천해준 이후로 매일같이 듣고 있는 노래. 시끄럽게 달려가는 지하철 안에서 듣고 있는 게 아니라면, 항상 편안함을 주는 노래. 많은 생각이 들게 하면서 무겁지 않은 노래. 카더가든이 부른 <나무>. 이 노래는 왜 나에게 질리지 않는 편안함을 줄까?
https://www.youtube.com/watch?v=cHkDZ1ekB9U

# 한 초등학생이 바라본 상록수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학부모 참관 수업날 자신의 부모님을 한 편의 시로 표현해서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반 반장의 차례였다. 같이 놀 때는 제일 유치하면서 선생님 앞에서는 제일 의젓한 그 친구는, 내가 보기에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재수없었다. 언제나 그 친구의 발표는 관심을 갖고 들으면 배울 점이 많았고, 한편으로는 단 한 번의 실수라도 포착하고 싶은 마음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곤 했다.

반장은 시를 소리내어 읽었다. 자기가 힘이 들 때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쉬고 싶을 때면 몸을 누일 수 있는 그늘을 내려주고, 언제나 한결같은 푸르름을 유지하며 늘 같은 자리에 있어주는 부모님을 상록수 같다고 말했다. 나는 지우개로 지웠다가 쓰기를 반복한 흔적만 범벅이고 아직 반도 다 못 채운 내 앞의 구깃한 종이를 바라보며, 그 친구가 시에 담아놓은 메시지를 깊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주근깨 가득하고 똘똘하게 생긴 얼굴로 또박또박 낭독하며, 자기 마음을 많은 이들 앞에서 자신있게 꺼내 보이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뒤에서 지긋이 바라보는 반장 아버지의 환한 미소도. 교실 안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두 명의 사람과 한 편의 시만 들어왔다.

그때부터 나는 부모님이라는 존재를 가장 온전하게 담아낸 듯한 그 은유를, 그 친구가 바라본 상록수를, 나무가 지닌 시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무는 내게 그런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존재의 표상이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그런 존재가 언젠가 찾아와 내 옆에 머물러주기를 원해 왔다.

# 한 대학원생이 바라본 가시나무
재작년 이맘때쯤 나의 모든 고민을 들어주던 한 대학원생 누나와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그때 그 누나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 가수 조성모 씨의 <가시나무>가 떠오른다고 말해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날따라 차가 많이 밀려서 버스 안에서 오랫동안 그 노래만 주구장창 들었다. 이미 여러 번 들어봐서 귀에 익은 노래였지만, 단 한 마디의 가사도 기억에 없었기에, 모든 가사가 누군가의 첫인상이라도 되는 듯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뭐야 나잖아? 인정하기 싫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_vBf5Do-D8

노래가 묘사하는 가시나무의 모습이 점점 구체화되면서, 나는 계속 자리에 앉아 있음에도 세상이 점점 아득히 멀어져 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놀라움이 점점 커져갔다. 저격당한 듯한 느낌을 주는 노래를 떠올려 낸 그 누나의 안목도 놀라웠지만, 내 눈에 비친 내 모습이 가시나무와 똑 닮아 있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 내향적인 기질과 좀처럼 다른 사람과의 접점을 만들려 하지 않는 생활 패턴 말고도, 내가 종종 느끼는 쓸쓸함의 원인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나무 같은 사람을 마냥 바라고 있었다. 언젠가 그런 사람이 먼저 다가와 주기 전까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나를 방어라도 할 생각인 양 뾰족한 가시로 덮어 왔던 것이었다. 그 가시는 부정적인 자극뿐만 아니라 모든 만남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결국에는 나 자신을 찌르고 있었다. 가시나무 같은 나의 모습을 그때 비로소 직시했다. 그때부터 나는 외부와 고립된 내면 세계로 자꾸만 침잠해 들어가려는 버릇을, 가시처럼 날카로운 면모를, 벗어던지려고 애써 왔다.

# 한 대학생이 바라보는 나무
어제 몇몇 사람들과 각자의 비전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100억 자산가가 되기, 학생들이 좋은 성적 받게 해주기, 학생들에게 인간적인 따스함을 전해주기. 그들의 말에서 확신까지는 아니어도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제 내가 말할 타이밍이었다. 내 마음 속 북극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은 언제나 풀리지 않는 숙제였고, 내 비전으로 채워 넣어야 할 빈칸은 썼다 지운 흔적만 가득한 종이처럼 구겨져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재수없던 반장처럼 또박도박 말하고 싶었고, 말하기 곤란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피하고 나서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뚜렷하지는 않고 추상적인 비전이 있다.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가꾸어 나가는 것. 나는 통제가 안 되고, 해결의 기미조차 안 보이는, 무자비한 무질서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그런 세계 속에서는 한 없이 불행한 편이다. 그래서 나에게 책임과 권한이 주어져서 개선하고 발전시키고 싶은 부분이 생기면 얼마든지 내가 손을 쓸 수 있는 세계를 세상 밖에 꺼내 놓는 것이 비전이다. 내가 직접 개발해 배포하는 서비스가 될 수도 있고, 그 규모가 커져서 플랫폼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 가는 세계에 동참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하나의 원천이 되고 세상과 직접 맞닿아 있는 그 세계가 있다면, 어떤 혼란과 모순이라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유와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의지가 생겨날 것이다. 머릿속의 문어를 구어로 옮기기 어려운 탓에, 그 자리에서 내가 한 말은 이것보다 더 횡설수설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나는 편안했다.

나는 비전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 밑그림은 한 그루의 나무다.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려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우뚝 줄기가 솟아나 버팀목이 되어주고, 무성한 초록잎으로 그늘을 내려주는 나무. 그 모든 것은 나무 스스로 가치로운 동시에, 나무 곁의 모두에게 가치롭다. 내 세계도 그런 나무 같은 곳이길 바란다. 그 바람을 직접 실현해 나가는 일은 손쉽지는 않더라도 그 속에서 나는 편안할 것이다. <나무>가 주는 편안함을 몸소 경험할 것이다.

https://pixabay.com/photos/trees-wilderness-nature-woods-3822149/

대학 물이 빠진 5년 뒤의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때부터 일상 속의 나, 누군가의 눈에 비친 나, 그리고 내가 직면하는 세계는 한 그루의 춤을 추는 나무를 닮아가고 있었다고. 가시나무 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