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남긴 여운을 담는 접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세계4대진미_돼지국밥 2021. 8. 23. 03:10
https://www.netflix.com/search?q=%EC%9B%94%ED%84%B0%EC%9D%98%20%EC%83%81%EC%83%81%EC%9D%80%20%ED%98%84%EC%8B%A4%EC%9D%B4%20%EB%90%9C%EB%8B%A4

내가 본 영화 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청각 연출이 두드러진다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시각 연출이 두드러진다. 두 영화의 차이를 하나 들자면 전자는 내가 딱 한 번 본 영화인데 반해, 후자는 다섯 번 본 영화라는 점이다. 오늘이 그 다섯 번째였는데, 정말 신기하게 이번에도 이 영화로부터 새롭게 발견한 요소들이 있다. 이 영화의 이스터에그라고 할 수 있는 것들 말이다. 물론 이스터에그 발견의 기쁨도 좋지만, 이 글에는 영화가 선명하게 보여주는 메시지를 남기고자 한다. 덧붙여, 영화 스크린이 정말 말 그대로 선명하다는 점이 매력이다.

#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시작
https://youtu.be/-GUB0LL3aJU

사실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는 표현은 영화 내용을 절반만 포함할 뿐이다. 나머지 절반의 표현은, 시작하고 나니 상상이 현실이 되어 있다는 말로 하고 싶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자기 책상 앞에 앉아 가계부만 놓고 따져보는 게 아니라 주변에 도움을 구하러 나서게 된다. 그렇게 조력자, 안내자, 그리고 무엇보다 동료를 만날 수 있다. 그 여정을 본인이 직접 시작한 것이든, 본인도 모르게 시작된 것이든 말이다.

# 상상 같은 현실이 주는 짜릿함
https://www.youtube.com/watch?v=kurY9aSolo0

아... 잠깐 이 장면을 말로 표현하는 상상을 해 봤는데, 그 상상만큼은 현실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 상상이 점차 현실에 대체되는 과정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the walls,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purpose of LIFE.

세상을 직시하는 것, 다가오는 장애물을, 저 벽들을 넘어 더 가까워지고,
서로를 발견하고, 몸소 느끼는 것.
그게 바로 삶의 목적이다.

나에게는 되게 울림이 큰 문장이다. '삶의 목적이란 무얼까?' 라는 질문을 버스 안에서, 위병소에서, 그리고 도서실에서 마주하던 나였다. 그때마다 내린 결론들은 곧, 책 속에 담긴 전문가의 고찰에 의해 기각당하기도 하고, 타성에 잠긴 내 게으른 고집에 의해 버려지기도 했다. 그 결론은 다 나름 논리적으로 도출된 것이었지만, 힘을 잃어갈 때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똑같은 질문을 계속 붙들고 있었다.

그러다 이 문장을 만났다. 그리고 여전히 내게 울림을 주며 살아 있다. 이 문장을 만난 이후로 더 이상 '삶의 목적'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이 문장이 방향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뒷받침하기 위한 그럴듯한 논리도, 무너지기 쉬운 허술한 약점도 없는 지침이다. 그냥, 읽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글귀다. 떠올리는 그대로 행할 수 있는 격언이다. 마지막 문장이 That is LIFE 가 되어도 말이 되는 진리가 아닐까?

내 삶이 흘러가다가 멈추는 그 순간까지, 나는 이 '삶의 모토'를 믿기를 계속할 것이다. 앞으로 그리움, 쓸쓸함, 압도감, 회한, 불안이 얼마나 더 찾아오고 얼마나 나를 뒤흔들지 모를 일이다. 삶의 모토를 향한 내 믿음이 때로는 배반당하기도 했지만, 그 믿음 덕택에 많은 순간 기대감, 따스함, 자신감, 뿌듯함, 설렘이 증폭되었던 것도 지난 경험이다. 영화 속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상상이 차지하는 분량이 점차 줄어들다가, 어느 지점부터는 지금 이 장면이 상상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잘 안 되는 지경에 이른다. 내 삶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니까, 곧 다가올 또 하나의 시작을 맞을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