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놓고 기역자는 몰라도, 낫 들고 기억은 잘 떠오른다
오늘은 가족 다 같이 벌초를 하러 갔다. 아침 일찍 나선 덕택에 고속도로가 한산해서 좋았다.

오면서 이번에도 벌집이 숨어 있지 않을까, 날이 너무 덥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다행히 벌집은 없었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었다.
옛날에는 벌초를 하러 시골까지 오는 길이 너무 싫었다. 낮기는 하지만 어쨌든 수풀과 나뭇가지를 헤쳐가며 산을 올라야 하고, 달려드는 모기를 쫓아내야 하고, 부모님이 벌초를 다 하실 때까지 기다리며 쌓인 풀때기들을 외딴 곳에 버리는 일을 하는 게 너무나도 불쾌하고 지루했다.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 시를 짓는 활동이 있었는데, 딱히 쓸 게 안 떠올라서 벌초에 대한 그 마음을 시로 썼다. 나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증조할머니와 조부모님을 위해 벌초를 하러 오는 게 싫다는 내용이었다. 국어 선생님이 그걸 보시고는 내 마음을 이해해주셔서 놀란 기억이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는 식의 꾸지람을 들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나도 낫을 들고 직접 하는 입장이 되니, 불쾌함과 지루함 대신 꽤 괜찮은 몰입과 멍 때림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수북이 자란 수풀을 자르고 자르다 보니, 햇빛을 피해 분주하게 그늘로 몸을 향하는 민달팽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생김새가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행동이 귀여워서 짤막한 수풀더미로 일단 햇빛을 가려줬다. 혹시라도 무게가 가해져서 못 움직일까 생각했는데, 아주 매끄럽게 잘 움직였다. 만약 민달팽이에게 집이 있었다면 못 지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행동을 하면 같은 행동을 했던 다른 상황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던가. 낫질을 하다 보니, 군대 혹한기 전술훈련 때 장대같이 자란 갈대를 베던 기억이 났다. 처음 거기에 도착했을 땐, 이거 실환가 싶을 정도로 정말 갈대밖에 없는 지대였다. 갈대를 베어서 지휘소와 장갑차, 텐트를 위장을 하는 작업을 했다. 갈대밭이 베여 나가면서, 뺑끼 부리는 인원들이 숨을 공간이 사라지는 탓인지, 거의 모든 중대원이 열심히 참여하는 듯한 모습에, 작업이 지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 작업이 다 끝나고 보니 숙영지가 꽤 그럴 듯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과정이 유쾌하고 결과가 보람찼던 기억이다.

돌아오는 고속도로의 반대 차선에 밀려있는 차들의 행렬을 보니, 아침에 한산한 타이밍을 잘 맞춰서 온 게 참 다행이었다. 꿈뻑꿈뻑 느리게 기어서 묘소까지 갔다면, 오늘 같은 여유는 없었을 것 같다.
요새 멍청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듯하다. 내가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한 걸까 자책하는 때도 많은 듯하다. 멍청해도 놀림받지 않고, 어떤 나쁜 결과도 따르지 않는, 멍청함이 유죄가 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움을 주는, 오늘 같은 날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