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주는 여흥을 담는 찻잔

오늘 하루를 그리는 <Artist>

세계4대진미_돼지국밥 2022. 1. 17. 00:20

2017년 4월, 신병교육대 수료식을 치른 다음날, 배치받은 자대로 가는 날이었다. 나와 신교대 동기들을 태운 아이보리색 중형버스는 덜컹거리며 비탈길을 오르내렸고, 도착한 곳은 ‘콰아앙’하는 전차포 소리가 그 울림이 다 멎기도 전에 다시 터지는 전차사격장이었다. 생전 그렇게 큰 파열음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온갖 무지 속에 둘러싸여 두근대던 심장은 더욱 떨리기 시작했다. 통제탑에 올라가 대대장님께 전입 신고를 하고, 간담회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보직을 받은 다음, "궁금한 것 있으면 뭐든 물어 봐"라는 대대장님의 인자한 권유가 내 경계심과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나는 그 물음에 응했다. "제가 맡은 일을 하는 매뉴얼이 따로 있습니까?" 사회에서 듣도 보도 못한, 어려워 보이기만 하는 보직을 5분 전에 명 받은 내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이었다. 대대장님은 말씀하셨다. "물론 있지.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매뉴얼을 따르는 게 익숙하고 편한 내게, 군대는 나름 적응할 만한 환경이었다.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은, 달리 말하면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할 여지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기'를 엄격히 지키면서 내게 던져진 일을 조용히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에이스'라는 격려를 들을 수 있었다.

정해진 틀에 박혀 있는 게 따분하기 그지없는 내게, 군대는 하루빨리 벗어나고픈 환경이었다.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은, 달리 말하면 무엇을 생각하든 그게 발현될 여지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내 하루에 분명히 영향을 주고 있는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레거시(Legacy)에 관해 의견을 제시하거나 감정을 표출하면 '폐급'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 있었다.

폐급 말고 에이스가 되자. 선임들이 던져주는 당근 맛에 중독되다시피 하며 살던 2017년 7월, 생활관 IPTV에 새로운 뮤직비디오가 나왔다.
https://youtu.be/obzb7nlpXZ0

매뉴얼이 편하지만 따분하고, 정해진 틀에 의존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그런 내게 이 노래 가사는 전차포 사격 소리보다 더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금, 토, 일도 월요일 같이 사는 내게 상줄 거야 Alright

나는 지금 내게 상을 줄 만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자문해 봤다. 어려운 문제였다. 군대 오기 전에는 어땠는가? 월요일도 금, 토, 일 같이 유영하듯 살았을 뿐이다.

제일 감각 있잖아 자기 집 거울 앞에선 Yeah

관물대를 열고 사각 거울을 바라봤다. 내게 감각이 없는건지, 내 감각을 담기엔 거울이 너무 작은 건지, 보이는 건 매너리즘에 절은 칙칙한 얼굴뿐이었다. 군대 오기 전에는 어땠는가? 자기 집 거울 앞에서'만' 감각 있었다.

흥얼대 혼자 샤워할 때처럼 Like whoo yes

정해진 시간에 대대원들이 같이 쓰는 공용 목욕탕에서 실행해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군대 오기 전에는 어땠는가? 혼자 샤워할 때'만' 맘껏 흥얼댔다.


나는 자신이 예술가임을 자처하는 저 남자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저 남자는 환경에 관한 언급은 1도 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취하고 있는 태도만을 언급한다. 내가 바라고 있지만, 멀게만 느끼고 등을 돌렸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단지 하루도 빠짐 없이 자기 집 거울 앞이나 욕실 샤워기 앞에서 그러듯 일상을 마음껏 그리며 살고 있었다. 또한 말한다.

Life is short, art is long
너나, 나나, 쟤나 I make'em say

이 노래를 들으면, 딱딱하게 잡힌 체계의 빈 틈에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모두가 예술가처럼 살 수 있다는 저 남자의 외침을 곱씹는 동안에는, 회색 같은 일상에 내가 스스로 색채를 부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품었다. 어제와 대동소이하겠지만 오늘만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이 노래는, 내가 환경 탓만 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였다.

https://pixabay.com/images/id-6884190/

환경 탓을 할 여지가 전혀 없는 요즘, 오직 나의 태도에 모든 것이 달린 지금, 이 노래는 중요한 사실을 매일 잊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행복의 언저리에서 고민은 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