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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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발을 헛딛고 패배해도 끝내 무언가 만든다 요조가 말하는 예술가의 하루하루뮤지션이자 작가, 제주의 동네 서점 ‘책방무사’의 대표인 요조의 산문집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 마음산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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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p.96
나는 복잡한 아픔들에 주로 모른다는 말로 안전하게 대처해왔다. 빼어나고 노련하게, 그리고 예의바르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손사래도 치고. 뒷걸음질도 친다. 그 와중에 김완이나 고승욱 같은 사람은 모르는 채로 가까이 다가간다. 복잡한 아픔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기어이 알아내려 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손을 내민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내 성격대로 살면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불편하다. 나는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성격이다. 살면서 해 본 몇 안 되는 심리 검사가 가리킨 내 범주, 살면서 보였던 나의 익숙한 반응이 그 근거다. 궁금하다. 나는 왜 내 성격이, 회피하는 내 모습이 싫은 걸까?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다 나와 다른 세계다. 어떤 세계든 거리낌없이 다가가던 어릴 적의 나는, 어느 순간 피부로 와 닿는 '다름'을 경험한다. 같은 반 친구들과 나 사이에 현저히 드러나는 경제적 수준의 차이는, 사람 사이의 우열처럼 느껴졌고, 뒤떨어진듯한 내 모습에 주눅이 들었다. 의연하게 웃음으로 승화하지 못했다. 그저 이방인으로 머물러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로 중대한 선택의 순간이다. 그때부터 망설임과 주저함, 놓침은 일상이 되었다. 나와 다른 세계는 점점 더 많아졌고, 점점 더 달라졌으며, 점점 더 모르게 되었다. 미지(未知)가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인상과 감정이 증폭되었다. 악순환이 습관을 고착하고 성격으로 만성화했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과 단절된 세계는 쓸쓸하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익숙한 세계에서 배움의 자세를 취하기란, 발견의 기쁨을 얻기란 훨씬 어려운 일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세상은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 다음 페이지의 내용을 몰라서 책장을 넘기지 않는 사람은 없지 않던가. 전혀 모르던 페이지를 읽더라도 여전히 모를 수 있다. 어떻게든 알아내려 해서는 안 될 수도 있다. 영영 기지(旣知)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뭐든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니까. 모르는 것을 직접 마주하면서.
성격이라는 녀석은 내 머릿속을 불수의근처럼 멋대로 주무른다. 이 녀석이 발현된 계기가, 그로 인해 놓치고 있는 기회가 가슴에 몹시 사무친다. 나는 억울한 사람이 아니라 극복한 사람이고 싶다.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라 거침없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내가 모르는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를 자유롭게 오가고자 한다. 그렇게 하면 몸은 불편하겠지만, 마음은 더없이 편할 것이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