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놓아둔 여백의 미를 집는 젓가락

천 개의 찬란한 태양 - 할레드 호세이니

세계4대진미_돼지국밥 2022. 3. 19.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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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피워낸 두 여자가 만들어내는 인간드라마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여성들의 삶.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작품으로,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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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습과 참화로 얼룩진 그곳의 이야기. 책장을 넘길 때마다 희망이 좌절당하거나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일이 '또 한 번' 벌어지지 않을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신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바라는 등장인물들의 기도가 무색하게, 세상은 너무도 무덤덤하게 시련을 쏟아냈다. 그렇게 곤경에 처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지난 날의 선택을 향하곤 한다.

501p.

황톳길에 놓인
새의 목욕 그릇
가장자리에 앉아
물을 마시던 피라미
철부덕 미끄러지더니
얼랄라 얼랄라
허부적 허부적

있으면 안 될 곳에 발을 들인 상황.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진창이 되어버린 삶의 현장을 마주했을 때 야속한 세상을 탓할 수도, 무심한 하늘을 탓할 수도 없다. 세상은 별 뜻 없이 움직이고, 하늘의 뜻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과거에 내가 품었던 이상만 꾸짖을 뿐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막무가내였을까? 왜 그때는 몰랐을까?" 회한이 담긴 추궁과 화해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532p.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결국에는 새의 목욕 그릇에 뛰어들고 마는 이유가 있다. 고요하고 잔잔한 하늘에 걸린 달을 세며 익숙한 편안함으로 앞으로의 밤을 달랠 수도 있었다. 쉽사리 잠들 수 없는 낯선 밤, 이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게 된 현재를 괴롭히는 아련한 기억이기도 하다. 하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기억을 재생산하기 보다는 벽을 넘어야 닿을 지평을 재발견하고 싶은 마음은 달랠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비극의 순환에서 빛을 내는 사람들이 커다란 울림마저 안겨 주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