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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10년전의 이른 봄, 작가는 한 여자가 베란다에서 식물이 되고, 함께 살던 남자는 그녀를 화분에 심는 이야기 『내 여자의 열매』를 집필하였다. 언젠가 그 변주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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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감상
꿈과 예술적 영감의 파격적인 표현보다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실존의 공허한 면모
# p.165 (본문의 내용을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
아마 그에게는 옷을 벗을 힘이 없었던 모양이다. 샤워기의 온도를 조절해 목욕을 할 힘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우묵하고 비좁은 공간이야말로 서른두 평의 아파트 안에서 가장 아늑하게 느껴지는 장소라는 사실을 그녀는 깨닫는다. …(잠깐의 공백)…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그런 순간에, 이따금 그녀는 자신에게 묻는다. 언제부터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을까. 아니, 무너지기 시작했을까.
# 이 대목에서 든 생각(제 기억에 작품에서 영혜 언니의 이름이 서술되어 있지 않아서, 편의상 A로 나타냈습니다 :)
- 영혜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꿈에서 마주하게 된 이후로 ‘육식(살생)을 조건으로 삼는 인간존재로서의 삶’과 투쟁을 벌였고, 영혜의 형부(비디오예술가)는 몽고반점에 깊이 감화하게 된 이후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존재를 인간을 매개로 표현하는 작업’으로 투쟁을 벌였다. 두 사람 각자의 투쟁은 일상의 공허한 모순을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하고,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마련한 도피처였다.
- 영혜의 언니이자 비디오예술가의 아내로서,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성실하게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온 A. 동생과 남편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성실함이 그저 비겁함이었을 뿐인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에 젖어든다.
-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는 행위가 어떻게 도망치는 행위로 보일 수 있을까? 아무래도 A가 위 대목에서처럼 욕조에 웅크려 누워 보며, 남편의 이상 행동의 원인을 찾고자 했던 그 즈음이 되어서야, ‘이전까지 여러 전조로부터 꺼림찍한 기운을 느꼈음에도 외면해 온 탓에 결국에는 폭발해버린 문제가 불러온 파국’을 직면했기 때문일 테다. 동생과 남편이 그녀의 삶을 진창으로 만들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파국이 그렇게 만들었으며, 그 파국은 절대로 갑자기 찾아온 사건이 아니다. 그녀가 반성하듯, 그녀가 막을 수도 있었을, 미약하게라도 예견된 일이다.
# 한 쪽 감상
부부 사이에, 자매 사이에, 정서적인 교류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고독이 불안을 낳고, 불안이 고립을 낳고, 그래서 더욱 고독해지는 악순환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혜는 육식하는 인간존재 자체의 모순이라는 심연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영혜의 형부는 자신의 존재를 넘어서 더 높은 고도로 날아 오르려고 애썼다.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단절시킨 채. 그들이 함께였다면 그토록 처절한 투쟁에 모든 것을 내던질 필요를 느꼈을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A도 자신이 그 단절에 어느정도 기여했음을 인정했다. 그래서 안타깝다. 누적된 피로와 경계를 넘어선 혼란 속에서도 상황이 잘못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 하는 그녀의 죄책감이 안타깝다. 감정을 덜어내고 생각해 보자. 그녀는 운이 나빴던 걸까, 사람을 잘못 만난 걸까, 아니면 정말로 자기 몫의 책임이 있고 대가를 치르는게 마땅한 걸까?
결국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던 간에, 주변 사람과의 연결, 주변 사람의 행복 없이 자기 혼자만 행복할 수는 없다. 불안의 기미를 포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막연한 기대로 무마해버렸을 때 찾아오는 막막한 파국을, 다소 극단적이지만 전달력 높은 이야기로 적나라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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