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사진 작가 숀 오코넬은, LIFE 잡지사의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을 보내며 "거기에 삶의 정수가 들어있다"라고 말한다. 오프라인 LIFE 잡지를 폐간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하기 위해 파견된 구조조정 책임자는 정수(Quintessence)라는 단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부하 직원이 귀띔해주니까 겨우 본질(Essence)이라고 알아차린다. 하지만 두 단어는 미묘하게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 미묘한 차이를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챗지피티에게 물어봤다.
질문 | '본질'과 '정수'라는 두 단어의 뜻은 어떻게 달라?
답변 | 본질은 빵의 밀가루처럼, 무언가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 요소를 말해. 반면 정수는 가장 훌륭하고 완벽하게 구워진 빵처럼, 무언가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상태를 말해.
어라라..? 내가 어림짐작하고 있던 것과 많이 다르네. 그렇다면 내가 요즘 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질문들은, 삶의 본질과 정수, 둘 중 무엇에 관한 것일까? 챗지피티의 도움 없이 직접 해 보자.
- 나의 성장과 커리어, 잠재적 보수를 고려할 때, 지금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까, 이직을 준비해야 할까?
- 지금 여러 요인으로 노동시장의 초과 공급이 심각하고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데, 어떻게 경쟁력을 갖출까?
- 부모님께서 더 이상 경제활동을 못하게 되셨을 때에 가족을 무리없이 부양할 수 있으려면, 지금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요약하자면 '시장에서 인정 받고 돈도 많이 벌어서 가족을 든든하게 지탱하는 나'의 '존재 요건'이 무엇일까에 관한 고민이다. '레드오션 마켓에서 끗발 좀 날리는 슈퍼 알파메일'을 삶의 정수라고 간주하자니,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하다. 영화의 말미에 포착했던 삶의 정수가 지닌 구체성과 생생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밀가루가 풍족하게 쌓여있는 창고 키를 사막에서 찾아내자는, 본질을 향한 맹목적 구호에 가깝다. 절대 부족할 일 없이 빵을 많이 만들 수 있도록 말이다. 빵의 풍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무슨 킥을 넣을지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는, 안정적인 생존에 한정된 고민이다. 본질을 갖춰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리다 보니 요즘 내가 분에 넘치게 머리가 무거웠던 게 아닐까. 어느 길로도 두 발짝 이상 발걸음을 내딛지 못할 만큼.
그렇다고 삶의 정수를 찾아보자니 어렵다. 다만 이제는 좀 가벼워진 마음으로 질문에 직면해 볼 수 있겠다. 이 길이 삶의 본질을 채워줄 길이 될지 여부는 미리 알 수 없는 거니까. 본질을 들먹이며 무언가를 망설이거나 주저한다면, 그것은 핑계다. 어떤 선택을 내리더라도, 그 길에 충실한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 그거면 된다. 그 과정에서 마주할 구체적인 내 모습과 경험들 중 일부는 분명히, 삶의 정수가 될 것이다. 먼 훗날 내 주마등에도 삶의 정수가 담긴 사진 한 장 띄울 수 있길 바란다.

삶의 본질을 추구하며 분투하는 이들에게, 당신은 이미 삶의 정수라며 찬사를 건네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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