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프로그래밍 경진대회에서 2등을 한 줄 알았는데, 우리가 1등이었다. 마지막 문제를 풀이한 시간만 놓고 보면 우리가 2등이었지만, 그 이전까지의 문제들을 우리가 훨씬 더 빨리 풀이해서, 모든 문제를 다 합산했을 때 우리가 더 앞선 것이었다. 대회 당일 날에는 나쁜 변수가 너무 심하게 작용했지만, 그때는 몰랐던 좋은 변수가 존재했구나 싶다.

아는 사람들 앞에서 상을 받아본 지 정말 오랜만이다. 선명하게 남은 가장 최근의 기억이, 5년 전에 대대원들 앞에서 우수 독후감 상을 받았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단상 위에 서는 것이 쑥스러운 기질은 역시 그대로지만, 기분이 좋다는 것 역시 변하지 않았다.

상장과 상금이라는 보상을 받고 나니, 지난 1년 반을 돌아보고 싶었다. 물론 자랑할 만한 순간은 결과를 인정받은 오늘이지만, 계속 기억에 남기고픈 순간은 과정을 함께 즐겼던 몇 번의 어제 같은 날들이다. 어설픔, 어지러움, 막막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곧 웃었던 우리들. 그것 역시 알고리즘 문제 풀이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얻지 못했을 순간들. 아마 3주 뒤의 ICPC 본선보다 오늘이 더 기쁜 날일 것 같다.

뜻밖의 이벤트, 뜻밖의 상, 그리고 뜻밖의 보람에 행복했던 오늘이다. 불과 한 달 전에는 이런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는 줄도 몰랐다. 반 년 전에는 내가 팀의 일원이 되어 프로그래밍 경진대회에 나갈 줄도 몰랐다. 학교 과제 때문에 처음으로 백준 문제를 풀어본 일 년 반 전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꿈에 가까워지지 않는 것만 같을 때마다 스티브 잡스의 말을 떠올리곤 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두 개의 점을 잇는 일이다. 선택을 한다는 것은 점을 찍는 것과 같다. 그런데 선으로 연결될 두 점이 무엇인지는, 결코 미리 알 수 없다." 오늘 너무나도 선명한 한 개의 간선을 본 것 같다. 다음 방점은 어디에 찍을까? SSAFY에 지원하며 행복 회로를 돌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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