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매콤하게
사랑은 달콤하게

- 노랑통닭 후라이드 치킨을 주문하면 나오는 양념소스의 비닐 포장에 적힌 문구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라는 과학 시간의 배움이 떠오른다. 그리고 학교 앞 기절초풍맛 양념닭꼬치를 먹을 때 찔끔 나오던 눈물, 그것마저 즐기던 내가 그때 받았던 충격까지도. 하루하루 감당할 수 있는 아픔이 벤 인생을 만나는 것이라면, 그 아픔이 인생의 풍미를 한층 더 끌어올려주는 것이라면, 매콤한 인생은 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달콤한 사랑은 어떨까? 고통 없는 사랑이 과연 가능할까? 사랑의 상실을 사랑의 고통이라 말할 수는 없겠다. 사랑이 그 자체로 아픔을 주는지도 잘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느끼는 아픔은, 사실 그것이 인생의 큰 문제와 너무나도 긴밀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반면 달달하기만 한 사랑은 어쩌면, 인생의 제약과 요구로부터 벗어나야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 없이 사는 사람을 가장 가엾게 여겨야 한다." 덤블도어 교수가 볼드모트의 내면을 보여주며 해리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다. 노랑통닭의 네 마디 문구가 인생과 사랑을 생각하게 만든 11월 셋째주 목요일은 세계 철학의 날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꿈을 향한 사랑, 자식을 향한 사랑이 교실 안에서, 교문 밖에서 인생의 기절초풍맛을 만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 보니 저 문구는 '맛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맛을 만드는 사람'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유가네 닭갈비철판볶음밥도 매워서 못 먹는 사람이 갑자기 불닭볶음면을 즐기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눈앞의 후라이드 치킨을 그냥 먹을지, 매콤달콤 소스를 찍어 먹을지를 선택하기는 쉽다. 결국 인생도, 사랑도, 자기가 맛보고 싶은 대로, 그 사람에게 맛보여주고 싶은 대로, 직접 맛을 더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많은 경우 선택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비닐 포장을 뜯어서 종지에 부어놓는 것보다
살짝 더 매콤할 뿐이다. 아주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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