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최훈 지음)의 11페이지 <소크라테스>를 읽고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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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느슨했던 마음가짐에 테스형의 따끔한 가르침이 얹어지곤 했다. "아, 그래. 나에 대해 더 알아야지. 그런데 저의 무얼 알라는 건가요, 테스형..." "너 자신의 무지함을 알라"라고도 해석되는 이 말은 사실 소크라테스가 처음 한 말은 아니라고 한다. 어떤 신전의 기둥에 적힌 글귀인데, 소크라테스가 중요하게 여기면서 적극적으로 자기 해석을 덧붙여서 자주 인용했다고 한다. 그는 저서를 남긴 적이 없고, 논쟁하는 것을 즐겼으며, 논쟁하는 것만 했다고 한다. 생업은 거의 하지 않고 말이다. 그의 논쟁에 어떤 울림이나 시사점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그의 발언들을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 같다. 21세기에 탄생하셨다면 키보드워리어보다는 백분토론 논객에 어울렸을 분인 듯하다. 그와 토론하다가 수세에 몰린 사람 중 한 명은 그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제가 보기에 당신은 외모나 다른 측면들에서 바다에 사는 넓적한 전기가오리와 아주 비슷합니다. (11p)
키보드워리어 출신의 시선으로 보건대, 이건 테스형의 꿈자리에도 나왔을 법한 극찬이다. 책에 따르면 이 말은 '소크라테스의 추한 외모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무지를 일깨워주는 성격을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정직한 의미로도 극찬이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무지함을 일깨워준 사람에게 이런 찬사를 보낼 수 있을까? 내가 거울을 보고 "아, 오늘 그래도 괜찮네." 하면서 기분 좋게 집을 나서서 만난 사람이, 내 얼굴을 보고는 "야 너 여드름 났어"라고 말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 여드름 난 줄도 몰랐네. 상대방이 기분 상할 법한 말은 좀처럼 하기 힘든 요즘 사회에 이렇게까지 날 염려해서 말해주다니 고맙다.' 그런데 만약 내가 심혈을 기울여서 붙여놓은 여드름 패치를 보고는 "야 너 여드름 났네" 말하는 사람이라면, 참~ 고마운 마음이 불그스름해지는 얼굴로 표출될 것이다. 왜 그런 차이가 발생할까? 생각해보면 '감춰놨는데 굳이 드러내는 것에 대한 괘씸함' 보다는 '굳이 감출 필요를 느끼지 않는 무던함'이 더 큰 요인인 것 같다.
무지함을 인정하는 무던함, 그것이 내게 필요한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좀처럼 고민을 남에게 꺼내놓지 않는다. 그 고민에 시달리다 과부하 되고 뇌정지가 오고 나서야, 답답한 마음에 어딘가 털어놓는다. 그런 고민으로 둘러싸였다는 점보다, 그 고민을 해결 못하고 있다는 점이 남들에게 나의 치부로 보일까 두려웠던 것이다. 핵심은 '남들'에 있다. 만약 내가 소크라테스와 둘만 있는 장소에서 1:1 대화를 했다면, 나 또한 그를 극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고라처럼 공개된 장소였다면 나 자신의 무지함을 언급하는 그에게 할 수 있는 대답은 이 말뿐이었을 것이다. "그럼 당신은 당신 외모가 전기가오리와 아주 비슷하다는 걸 알고 있나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염려 때문에, 내가 놓친 내 모습을 알 기회를 두고, 눈을 감고 귀를 막는 것이다. 아주 어릴 적 숨바꼭질할 때 두 눈을 손으로 가리면서 ‘내가 앞이 안 보이니 술래도 내가 안 보이겠지 ㅋㅋ’ 혼자 키득대다가 갑작스런 술래의 손길에 일순간 광명이 일지 않았던가. 감각을 차단하면 불리한 게임이 된다는 걸 “또 나만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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