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 365"(최훈 지음)의 9페이지 <철학의 시작은 놀라움>을 읽고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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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일상에 상상은 없다. 한때는 대중교통을 타고 오갈 때, 하루를 마무리할 때, 이부자리에 누워 눈을 감을 때 내 머릿속은 상상으로 가득했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고유한 전문 분야를 갖는다면, 우리는 경쟁 없는 사회에서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나무에 매달린 나무늘보의 전문가가 되고, 그 나무늘보가 매달린 나무의 전문가를 다른 사람이 맡는 그런 세상은 어떨까? 이 정도로 디테일하다면 80억 인구 중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독자적인 영역을 차지할 수 있을 텐데." 코딩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 이런 쓸데 없는 생각들은 당장의 급한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들로 점차 대체되어갔다. "트리에서 동적 계획법이 자명함을 얻는 근거는 뭐지?" 어느 순간 검사해 본 MBTI는 N(직관형)에서 S(감각형)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간이 다소 흘렀고, 컴퓨팅 사고력을 위한 고민에서 갈증보다 싫증을 더 많이 느끼게 되었다. 그런 고민들은 컴퓨터 앞에서 각을 잡고 나서야 겨우 하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내 일상에 상상은 없다. 스크롤을 내리며 스쳐갔던 탕탕 후루르르르만 귓전에 맴돌 뿐이다.
 
 설렘 대신 불안이, 생동감 대신에 기시감이 일상의 수식어가 되었다. 발걸음이 무겁다. 모두가 극찬하는 어느 일타 강사의 커리 큘럼을 소장하기만 하며, 권위자가 추천한 어느 양서를 북마크 해 놓고 까먹으며, 압도 당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알아야 할 쓸모 있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그것들을 탐독하며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들을 딥러닝하며 저 너머로 날아가는 AI들을 보면, 변명의 여지를 찾는다. "내가 이걸 공부하는 게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정말 쓸모가 있을까? 어차피 해도 안 되는 거 아니야?" 운 좋게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은 쓸모 있는 경험이었다. 달콤한 자극을 주고, 더 열심히 하게끔 자극을 주었으니까. 그런 경험이 점차 사라지면서부터 시간은 소중한 것이 아니라, 늘상 비슷한 그저 그런 것이 되어버렸다. 나 또한 그저 그런 동료, 쓸모를 찾기 힘든 입사지원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따지기 시작하면 학문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장 쓸모 없다고 생각해도 언젠가 쓸모 있게 될지도 모른다. (9p)

 
 
 1년 넘게 내적 손절 해버렸던 철학을 다시 시작해 보자. 달걀이 먼저일까, 닭이 먼저일까? 아니, 놀라움이 먼저일까, 쓸모가 먼저일까? 개발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당시의 나는 쓸모를 원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그저 개발자의 세계에 놀라움을 느낀 사람이었다. 그 당시 미래에 대한 전망 같은 것은 내 머리만 주물렀을 뿐, 가슴이 뛰게 한 것은 유튜버 "생활코딩"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세계를 보며 느낀 경이였다. 내 일에 대한 걱정 고민이 아니라, 내일 발견할 경이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면, 다시 불면증이 찾아와도 괜찮다. 그런 상상을 하며, 그런 꿈을 꾸며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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