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 먹어 본 마라탕의 개수: 1
여태 달려 본 마라톤의 횟수: 2
# 첫 번째 마라톤, 제8회 거제시장배 섬꽃 전국 마라톤대회, 25년 10월 12일 일요일


# 두 번째 마라톤, 제27회 국제신문 부산마라톤대회, 25년 11월 16일 일요일


# 감상
두 마라톤 다 경치가 인상깊을 정도로 좋았다는 건 확실히 기억한다. 거제도 마라톤에서 코스를 따라 펼쳐진 산과 바다는 마치 여행 온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다대포 마라톤에서 낙동강하굿둑을 달릴 때 오른편의 낙동강 수면 위로 반짝이던 초대형 윤슬은 눈이 너무 부셔서 차마 오랫동안 시선을 둘 수가 없었다.
첫 번째 마라톤에서는 나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그래서 완주만이 목표였다. 처음이니까 무리하지 말고, 끝까지 참자는 마인드로 임했다. 목표를 이루는 순간은 더없이 달콤하고 짜릿했으나, 그 이전까지의 시간이 참 고되었다. 12km쯤 달리고 나서 보급소에서 바나나 반 쪽을 먹을 때만 빼고. 바나나의 힘은 대단했고 어느 정도 활력이 돋아났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머릿속으로 피니시 라인을 그리기만 하며 달렸다. 거제도의 멋진 풍광조차도 상상속의 피니시 라인만큼 매력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일 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좋아 보이는 문을 고르기 보다는, 내가 고른 문으로 들어가서 마주하는, 방 안에서의 시간을 좋게 만들자." 나는 마라톤의 입구로 들어왔음에 도취해 있는 채로, 얼른 출구로 나가기를 갈망하느라, 그 사이의 경험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즉, 내가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는 사람"이 되어서 어깨가 올라갔고, "하프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이 되고자 눈이 돌아갔다. 그러고 있는 동안 하프 마라톤이라는 경험은 근육통과 인내만 따르는 노동으로 전락했다.
두 번째 마라톤에서는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적어도 완주만큼은 보장된다. 그러니까 첫 마라톤처럼 끝만 보지 말고, 과정을 즐기자는 마인드로 임했다. 그걸 실천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실천하려고 부던히 애썼다. 내 기억에 바나나를 주던 보급소가 두 번이나 나왔는데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바나나의 힘은 대단했고 역시 활력이 돋아났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어야만 한다고 닦달하며 달려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기만 하면 되는 유쾌한 경험인데 이것조차 즐기지 못한다면, 일상의 끝없는 권태와 과제가 찾아왔을 때 무엇을 무기로 맞설 수 있는지 모르겠으니까.
나는 두 번째 마라톤을 완주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서포터 분들의 '파이팅!'을 힘차게 복창하고, 하이파이브맨들이 보일 때마다 힘차게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분명 그 짧은 순간들은 즐거운 여운을 남겼지만, 달리기의 고통을 잊게 할 만큼은 아니었나 보다. 부족한 것이 훈련에 투자한 시간인지, 러닝화에 투자한 돈인지는 모르겠다. 뭐, 둘 다 보충 투자를 하다 보면 알게 되겠지.
순간으로 끝날 단 하나의 찰나를 위해, 구간으로 이어질 일련의 순간들을 감내와 희생 대상으로만 보는 관점. 지난날의 내가 무언가를 거하게 말아먹을 때를 보면, 꼭 그러고 있었다. 그러다 고장이 나 버렸지. 다시는 고장이 나지 않기 위해, 기꺼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무언가를 즐기려면 그것에 익숙해지는 정도를 넘어 서 능숙해져야 한다.
내년에 달릴 마라톤들에서는 내가 가장 잘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빠르고 편하게 달리는 게 아니라, 가볍고 편안하게 달리는 쪽으로. 내년에 달리는 마라톤은 마라탕처럼 자극적인 맛에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슴슴한 맛에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것이길 바란다. 그렇게 상쾌한 러닝 구간을 떠올리며, 꾸준히 러닝을 즐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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