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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빛난다

삶의 의미와 무의미에 정면으로 도전하다!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 『모든 것은 빛난다』. 동일한 책에 대해 《뉴욕타임스》에서 유례없이 세 번이나 리뷰를 실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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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평점이 8.06이라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8점을 매긴 사람들이 이 책을 두 번 더 읽고 2점을 더 올려주길 바란다. 나도 이 책을 딱 한 번만 읽었을 때는, 이 책이 참 잘 설명하고 있지만 내게 잘 전달되지 못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니 말이다.

 

 "삶이란 덧없는 거야"라는 말은 화자가 구태여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청자에게 잘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그 말을 던지는 일도 간단하고, 그 말을 받는 일도 간편하게 이뤄진다. 하지만 "삶에는 더없이 빛나는 것들이 있어"라는 말을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전달하는 일은, 쉽고 편함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청자의 입장에서 화자가 그 말을 믿고 정말로 힘을 얻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믿음이 실로 가치 있는 믿음이라는 걸 남들에게 납득시킬 힘이 없다는 게 사실로 드러나면, 그 가정이 무색해지기 때문일까?

 

 이 책의 저자와 역자가 그런 의문을 품고 "대충 하면 큰일 난다"고 되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그런 의문이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질 만큼 설득력이 있다. 높은 전달력을 위한 고뇌, 그리고 버리고 다듬는 과정을 얼마나 거쳤을지 상상이 안 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독자에게 와 닿을 만한 이야기들에 빗대어서 설명하고, 현상을 그 자체로 해석하고 있기에, 가장 깊은 바닥에 버려진 실존을 수면 바로 밑으로 올려 보내는 데 성공한다. 가치로운 삶은 이 책 속에서 드디어 우리에게 익숙한 경험과 직관으로도 충분히 건져낼 수 있을 만큼,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단지 독자가 할 일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막연히 수면 아래에 비친 모습을 책을 통해 관망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뜰채로 있는 힘껏 건져 올리는 것이다.

 

새벽벌을 비추던 한 그루의 단풍나무

 

# 지금 내 관심을 끄는 것, 뜰채로 건져 올릴 것

 

 매 순간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자연의 번쩍임, 퓌시스(physis).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고 육성하는 장인 정신, 포이에시스(poiesis). 그리고 이 두 가지 성스러움을 위협하지만,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문명을 드높여 명백히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테크놀로지(technology). 현대의 문화를 지탱하는 세 가지 요소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탁월한 감각, 메타 포이에시스(meta poiesis). 이것들은 모두 실천 속에서 계발되는 능력이자, 후회의 위험을 감수하고 나서야 비로소 터득할 수 있는 가치로운 삶의 방식이다.

 

 앞으로 순간이 어떻게 나를 잡아당길지, 그리고 나는 그 순간에 기꺼이 몸을 맡길 것인지 아니면 그 순간의 어두운 측면을 보고 거부할 것인지. 이 모든 불확실성을 목전에 두고 확실하다는 느낌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직 실천의 길이 많이 남은 내 입장에서는, 저자와 역자가 열심히 전달하고자 한 믿음을 건져 올리는 일로 당장은 충분할 것이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아가면서는 근거 있는 믿음보다, 근거 없는 믿음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위임받은 일로 가득한 실제 세계에서는 근거 있는 믿음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게 사회의 불문율이면서, 사람들 사이 무언의 약속이니까. 하지만 가치로운 삶을 향할 권리는 누군가로부터 위임받은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타고난 권리이자, 그 권리로써 더욱 탁월한 감각으로 세계를 재구성할 수 있다. 또한 남들이 설정한 규율과 기준에 맞추는 것이 그토록 까다롭고 지치는 일이라면, 굳이 그 방식을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다. 실체적인 근거에 대해 회의하느라 믿음을 잃지 말고, 근거 없는 믿음을 바탕으로 다양한 색채의 실존을 그려 나가는 것. 선생님은 그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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