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핵심 구절

# 7가지 키워드에 대한 블로그지기 주석

 

1. 고도의 문화

'고독한 문화'와 대치되는 표현. 데카르트 이후로 인간 이성 중심주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인간은 스스로 의미의 할당자가 되고, 의미의 외적인 원천을 포착할 가능성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회의의 장막에 차단되었다. 이로써 문화는 옛적부터 그것을 지탱해오던 토대를 상실하고,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상실은 가능성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지, 그 끈이 사라져 버렸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우주의 중심에 가 닿으려는 욕망에 광신적으로 매달리느라, 주변에 산재하는 의미의 가능성을 간과하고 있을 뿐이다. '고도의 문화'는 보편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최고의 선(good)으로 보는 시각으로부터 벗어나, 국지적이고 일시적이기도 한 표면적인 진리를 포착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지닌 문화다. 삶은 일관되지 않게 변모하기도 하고, 매 순간 부여했던 다양한 의미들은 서로 모순되기도 한다. 그런 모순에 낙담하거나 그것을 억지로 화해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시점의 변화에 따른 현상의 연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고도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2. 어느 시적인 민족

주어지는 현상에 몸을 맡기면서도 그 속에 내재된 의미를 포착하는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공유되는 정조 속에서 유대의 가능성을 내포한 공동체. 이때 '정조'는 간단히 말하면, 문화의 감성적인 측면이다.

 

3. 그들의 타고난 권리

'계몽'은 잠자고 있던 이성을 깨워 인간이 스스로 의미의 자족적 원천이 되는 데 기여했지만, 외부 세계로부터 주어지는 의미를 받아들이는 감각을 잠재워 버렸다. 이 책에서 그런 감각을 펼치는 사람을 탁월하다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타고난 권리로 오늘날에도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다. 다만 활용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4. 옛날의 쾌활한 오월제 신들

부슬비 내리는 11월의 축축한 영혼에게 필요한 것. 봄의 축제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기쁨과 즐거움 속에 공동체 모두가 하나될 수 있게 해 주는 문화의 토대 및 배경.

 

5. 오늘날의 이기적인 하늘

오월제 신들은 매번 다른 색채의 빛을 땅으로 내려주며, 그 의미들 이면에 궁극적인 진리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은 하늘을 진리를 관조하는 창으로 여기고, 한 인간의 관점적인 해석을 단일한 진리로 여기려는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이기적이다. 

 

6. 신들이 사라진 언덕

언덕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이고, 옛적에는 만신전이 예술작품으로서 작동하던 곳이었다. 만신전은 신들이 존재하며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다신주의 문화의 토대 및 배경을 더욱 강화하는 기능을 했다. 오늘날에 언덕은 천문대의 망원경이 작동하기 좋은 입지 조건에 불과하다.

 

7. 거대한 향유고래

인간이 형이상학적으로 설정하는 초월적 존재, 예컨대 신 또는 보편진리의 표상이다. 흰색의 거대한 향유고래는 인간에게 매번 다른 현상으로 나타난다. 난폭하게 꼬리로 내리치기도 하고, 인간에게 무심한 듯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기도 한다. 드넓은 바다를 가로지르며 헤엄치며 그 모습을 목격하는 인간에게 기쁨과 경이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초월적 존재를 잡는 것은, 말 그대로 인간 경험을 초월한 영역이다. 우리가 향유고래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일깨워주는 정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일이다.

 

이미지 출처 : http://jesselatour.blogspot.com/2016/04/moby-dick-ch-85-fountain.html

 

# 블로그지기 추천의 글

 

빛이 나는 건 여기 있잖아

 

뚜렷하다고 자부했던 확신이 무너지고, 이불 밖에 있는 그 어떤 것을 떠올려 봐도 의욕이 생기지 않을 때 이런 결론을 내리곤 합니다. '하.. 인생.. 결국 다 부질없는 거 아냐?' 한없이 늘어진 채 어두운 천장을 보며 사색하지만, 깊은 깨달음 대신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은 깊은 한숨뿐이네요.

 

세상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관한, 선택의 무게에 끊임없이 시달리다 보면 '도대체 이 지긋지긋한 고민은 왜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해야 끝날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각박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이런 질문에 몰두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에 모든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어도 모자라니까요. 저는 이불 속에 누워서 골치 아픈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자신을 두고, 타당한 변명거리를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혹시 내가 못 보고 있는, 삶의 본질(Essence)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이렇게 반문해 보는 일이 막연하기는 해도, '사는 대로 생각하는 거지, 뭐.'라고 성급히 타협해버리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짐작했지요. 그렇게 번뜩이는 발상을 갈구하던 중 「모든 것은 빛난다」(휴버트 드레이퍼스, 숀 켈리)를 만났습니다.

 

이 책은 여러 고전 속에 담긴 세상과 그것에 조응하는 인간상을 보여줍니다. 작품별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이로움'에 공감하며, 제 삶에서 환하게 빛나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의식적으로 그런 기억을 회상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다채로운 그날의 체험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군요. 만약 제가 이불 속에 계속 머문다면, 이번 독서활동은 단지 추억팔이에 그칠 것입니다. 새로운 여정을 나선다면, 확실한 길라잡이가 되어주겠지요.

 

이 책은 저처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단테의 「신곡」, 그리고 멜빌이 쓴 「모비 딕」 등의 예술 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친근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저자는 말합니다. "모든 빛나는 것들은 현대에 이르러 사라진 게 아니라, 단지 현대 사회에서 외면받고 있을 뿐이다." 이 말처럼 그것들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이 책이 보여주는 다양한 빛의 원천 중에서, 지금 당신의 눈에 포착되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그게 바로 오늘 당신이 발현할 수 있는, 삶의 정수(Quint-essence)가 아닐까요? 감히 짐작해봅니다.

 

「모든 것은 빛난다」 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당장의 놀라운 경험을 행운, 우연, 운명, 그 무엇이라 부르던 간에 내 앞에 나타났음에 감사하자는 것이지요. 이 책을 만난 계기도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온갖 사변을 난해하게 늘어놓은 제 글에 대한 피드백이 끝나고, 글쓰기 지도 선생님께서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셨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을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책이니까 한 번 읽어봐요." 덕분에 이제 저는 액자식 구성으로 책을 소개하고 있네요 :)

 

더는 치열하게 버티고 서 있을 힘이 없는 학우에게, 그리고 일어설 동기를 잃어버린 학우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친절한 안내 없이 우리를 휩쓸기도 하는 현시대의 조류에서 잠시 벗어나, 찬란한 통찰을 담은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겨보는 것이 어떨까요? 이 책은 텅 비어있던 가슴이 온통 벅차오르는 경험을 선물해줄 것입니다. 눈부신 봄의 햇살을 만끽할 때, 운명의 상대를 만난 것만 같을 때, 응원하는 스포츠 팀이 거둔 짜릿한 역전승에 환호할 때, 그럴 때 마구 요동치는 심장을 가진 효원인이라면 누구든지요. 빛이 나는 건 바로 여기, 새벽벌에도 있더랍니다.

 

- 작년에 부산대학교 도서관에서 주최한 '효원인 감동공유' 프로그램에 응모하였으나, 코로나 때문에 효원인들에게 공유되지 못한 글이다.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 궁금해 하는 공대생 친구에게 이 글을 보여줬더니 "도대체 책이 어느 정도길래..."라고 말하며, 나를 무슨 약팔이 장수로 보는 듯한 반응이었다. 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전까지는, 이 글이 쫌... 오글거린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보여주니까 정말로 오글거렸다. 아무튼 이 책은 그 정도로 걸작이다.

 

# 한 줄 감상

 인간이 가진 탁월한 감각에 관한, 가장 탁월한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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