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전달하는 것.
그 이전에 가치를 전달하기로 약속한 것.
왠지 부담된다.

한 달 전, 부산 소재 모 기관에서 운영하는 1:1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내가 멘토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전부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던 친구의 추천 때문이었다. “멘토 방문 등록할 때에는 간단한 서류 작성하는 거 발고 별 것 없다. 편하게 다녀오면 된다.” 친구의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그 기관을 찾아갔고, 담당자 분도 아주 친절하게 맞아주셨다.

하지만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계기로 기관 차원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듣고 난 뒤, 내가 서명할 서류들을 눈앞에 두고 한 손에 볼펜을 쥔 동안에는 낯선 느낌이 들었다. 지금껏 적잖은 양의 서류에 내 이름 석 자를 적어왔지만, 이번 서명에는 전에 없던 무게감이 있었다.

정식으로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주는 일은 물론이고, 누군가에게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남기는 일도 처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멘토링 활동지원금 이상의 값어치를 할 수 있을까? 멘티가 기대한 만큼의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괜히 나보다 더 뛰어난 멘토를 만날 여지를 없애버리는 것 아닐까?

3주 전, 멘티와 처음 만났다. 컴퓨터 하드웨어는 좋아하고 소프트웨어는 싫어해서 모 대학의 반도체공학과 진학을 목표로 한다는 고등학교 2학년 친구. 식곤증 때문에 모의고사 영어 시간마다 잠들어서 성적이 낮게 나온다는 그 친구. 이 멘토링을 통해 자기주도학습에 도움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그 친구. 멘토링이 끝나고 숙제를 보내기로 해놓고 안 보내길래 전화해서 물었더니, 2월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하던 아주 자기주도적인 그 친구.

그리고 오늘, 본격적인 멘토링의 시작이었다. 제 3자의 눈으로 그 친구가 문제를 읽고 푸는 모습을 지켜보고 피드백해줬다. ‘a>0’ 같은 부등식 표기가 헷갈려서 ‘a=+’로  적는 자기주도적인 표기 습관을 보니, 문제점이 선명해서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멘토링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오늘 멘토링이 어땠냐고는 굳이 묻지 않았다. 진행하는 내내 그 친구가 보였던 태도와 반응이 이미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가치를 전달하기로 약속한 것.
그 이후에 가치를 전달하는 것.
역시 보람차다.

그 친구의 올해 목표는 ‘전 과목 2등급씩 올리기’이다. 내가 그 목표 달성에 큰 도움이 된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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