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 에그(Easter Egg): 영화, 책, CD, DVD, 소프트웨어, 비디오 게임 등에 숨겨진 메시지나 기능을 뜻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8A%A4%ED%84%B0_%EC%97%90%EA%B7%B8

 

 내가 어떤 만화나 영화, 문학 작품에서 느끼는 매력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이스터 에그다. 전문 용어로는 복선, 일상 언어로는 떡밥이 비슷한 의미인데, 나는 이스터 에그가 복선(떡밥)을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이라고 본다. 복선은 앞으로의 전개를 추측할 수 있게 해 주는 단서이자, 지금 시점의 전개를 뒷받침해 주는 근거다. 복선은 스토리 전개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그 덕택에 감상자는 더욱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모든 이스터 에그가 복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즐겨보는 만화의 최신화에서 주인공이 먹은 악마의 열매고무고무 열매가 아닌 태양의 신으로 변신할 있는 열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무리 주인공이 먼저고, 주인공을 챙겨주는게 좋아도 그렇지, 이렇게 갑자기 엄청난 스펙을 부여해주는 것이 뜬금없게 여겨졌다. 탱탱볼 갖고 놀다가 느닷없이 태양? 그런데 오늘 이 갑작스러운 설정에 어울리는 요소들을 작가가 이미 숨겨 놓았던게 아닐까 생각했다.

 

1. 만화 1권의 제목이 '동터오는 모험 시대(Romance Dawn)'이다 -> 작중에서 숱하게 언급되는 여명(Dawn)은 그동안 '새로운 시대로의 이행'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졌는데, 이제는 그걸 이끌어가는 주인공(태양 같은 존재)의 도약 또는 부상이라는 비유적 의미도 갖는다.

2. 주인공은 4개의 바다 중 이스트 블루(동쪽 바다) 출신이다 ->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

3. 주인공의 미들 네임인 'D', 그리고 주인공이 이어간다고 하는 'D의 의지' -> 'D'는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형상화한 것과 닮았고, 'Dawn'의 약자이기도 하다.

 

 이런 요소들이 주인공이 태양의 표상이라는 새로운 설정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해준다고 말하면 그건 억지다. 복선이 될 수 없지만, 언어 유희를 매개로 연결되어있다. 기존 요소와 연관을 맺는 새로운 요소는 '작가가 쪽대본을 쓰나? 점점 막장으로 가네' 같은 불신의 여지를 없애 준다. 이번의 전개가 전혀 뜻밖이긴 해도, 작가가 첫 화를 출간할 때부터 구상하고 있던 큰 그림의 일부일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나는 앞으로의 전개를 추론해보는 일에는 취미가 없다. 대신 이미 주어진 요소들 사이의 유사성이나 연관성을 발견하는 일을 즐긴다. 그래서 이스터 에그를 찾을 때가 가장 재미있다.

 

https://pixabay.com/imaages/id-3123834/

 

 내가 찾은 이스터 에그가 실제로 작가가 의도한 이스터 에그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만약 작가에게 물었을 때 "오 그렇게 연결지을 수도 있군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나는 착각을 했다기 보다는 창작을 했다고 보는 게 맞을 테다. 이스터 에그를 찾는 과정도 (2차) 창작 활동에 참여하는 한 가지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오 맞아요 제가 의도한 게 딱 그거에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작가의 천재성에 한 번 더 놀랄 것이다. 이렇듯 이스터 에그는 창작과 발견의 기쁨을 동시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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