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TCI 검사를 받았다. TCI 검사는 심리 검사의 한 종류로 기질과 성격을 분석하는 데에 사용된다. 검사 결과 눈에 띄었던 것은 '(높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받아들이기는 싫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나는 불확실성의 다른 이름인 '가능성'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했지만, '가능성'이라는 녀석조차 목전에 둘 때면 심장이 쪼그라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동일한 입력을 받으면 동일한 출력을 내놓는 컴퓨터의 확실함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현재에서 바라보는 미래는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불확실성이 모여 있는 곳이다. 현재의 눈으로 바라본 미래의 나도 불확실한 존재다. 나는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렇게 '?'로 남겨놓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이상적인 미래상, 확실한 '!'를 상정해 놓고, 불확실한 미래를 대체하도록 했다. 고등학생 때는 경제학자가 되어 있는 내 모습이 미래상이었다. 그렇게 근거 없는 믿음으로 미래의 불확실함을 잊은 채로 수험 생활을 잘 마치고 대학에 올 수 있었다.
대학교는 학생과 직업인 사이의 경계가 된다는 점에서 고등학교와 달랐다. 새내기 때만 해도 그 점이 와 닿지는 않았다. 군대 2년 다녀오고 나면 졸업이 빨라야 5년 뒤의 일이었으니까. 도전에 실패하고, 능력 부족에서 오는 씁쓸함을 맛 보아도 거기서 끝이었다. 아직 '미래의 내가 되었는지 못 되었는지 심판받는 시기'는 까마득하게 멀었으니까. 그 시기가 되기 전까지 어떻게든 해내겠지 뭐.
컴퓨터의 확실성에 이끌려 개발자가 되기로 마음 먹고 나서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에 시차는 좁혀지고 간극은 벌어졌다. 내가 떠올리는 미래상이 터무니 없는 것이 될 확률이 커졌다. 그래서 근거가 필요했고, 현재 맞닥뜨리는 결과에 일희일비하게 되었다. 결과가 성공적이면 미래상도 성공적으로 실현될 것만 같았는데, 실패하거나 능력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는 미래상을 지탱하던 기반 자체가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문제를 해결할 로직을 떠올리지 못하거나 발생한 오류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면 "이러다 개발자 못 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개발자 못 되면 안 되는데."
이제는 이같은 감정의 격한 오르내림이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라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도 굳이 받을 필요가 없는 심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재는 '단 하나의 미래'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또 다른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고 해서 '단 하나의 미래'로 나아가는 현재가 무의미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학자가 된 내 모습을 꿈꾸며 수험 생활을 열심히 했다. 그 덕에 지금은 개발자가 된 내 모습을 꿈꾸고 있다. 나는 새내기 때까지만 해도 경제학자가 내 천직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맹목적인 믿음과 별개로 변화는 찾아왔다. 그런데 미래상이 변했다고 해서 이전까지의 내 경험들이 무의미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미래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되었다. 수험 생활을 열심히 한 덕택에 대학에 와서 학업에 집중할 기회를 얻었고, 학점 관리를 충분히 한 덕택에 원하는 학과의 전공 수업으로 졸업 학점을 채울 수 있었다.
나는 경제학자가 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영 경제학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듣는다면 충격 받아서 그날 야자를 빼먹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비 경제학도라면 알아야 할 것이다. '현재의 최적 선택'과 '미래의 최적 선택'이 동일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개발자가 된 나'라는 미래상도 마찬가지다. 영속적일지 일시적일지는 미래가 되어 봐야 안다.
따라서 '이게 될 것 같네, 못 될 것 같네' 하고 미리 심판할 필요가 없다. 심판의 근거도 필요 없다. 현재의 실패와 한계에 그것 자체가 주는 교훈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의 성취를 단서로 삼아 미래를 점치지 않던, 여유롭던 고등학생 시절에 내가 깨달은 바가 있다. "공부를 하면서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픈 순간에 실력은 가장 많이 오른다." 어려운 도전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미래는 그 본질이 불확실성이다. 아무도 미래를 알지 못한다. 어떤 미래가 찾아올지 모르기에, 굳이 현재의 나와 저울질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만들어 가는 일은 막연히 지금 내가 가진 미래상에 가까워지는 일이 아니다. 앞으로 어떤 미래를 갈망하게 되든, 그것을 직접 선택하고 관철할 수 있는 토대를 쌓아가는 일이다. 현재의 미래상은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더하고, 그 의미를 동력 삼아 현재의 나를 육성하게끔 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선택과 집중'이 꼭 '배제와 집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뚜렷한 방향이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 방향만 있다고 착각하지는 말자.

# 불확실성과 함께 사는 방법
1단계. 일상 속 작은 것부터 '변하지 않을 확실함'으로 채우기 ☞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내력을 쌓는 것
2단계. 불확실한 미래는 불확실하게 내버려두기 ☞ 혁신가가 변화시키는 것은 항상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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