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XX에 미쳐라”, “20대 때 알아야 할 것들” 따위 이름의 책들. 게임 커뮤니티에서 공략법을 공유하는 것처럼, 개인적인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집단지성의 일례일까. 아니면 20대 때 XX에 미쳐보지 않았거나 알아야 마땅한 것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걸까, 마치 박자 못 맞추는 학생을 음악 선생님이 나무라듯?
삶의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 버튼을 누르지 말라는 말을 따를까 말까? 저 사람들의 템포에 맞출까 말까? 어느 길을 택하는 게 결과적으로 합리적이고, 실존적으로 올바를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남들이 떠들어대는 온갖 잣대와 기준 앞에 설 때 들려오는 째깍 소리.
전광판에 명품 시계
사람들이 정확하다며 찰 때
난 미친 아파트 미친 빌라 틈에
발자국이 울리네
째깍 째깍 째깍
명품 시계는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준다. 명품 시계를 차는 삶은 사회의 박자에 발을 가장 잘 맞추는 삶이다. 그런데 굳이 명품 시계를 찰 필요가 있을까? 째깍 소리를 가장 잘 듣고, 그 박자를 가장 잘 맞추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속에서, 탁 트인 언덕을 꽉 막힌 벽돌로 바꿔버린 공간 안에서, 발 소리는 이미 너무나도 선명하게 귀를 때려주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표준. 거기에 나를 끼워맞추면 안전하겠지, 사람들과 앙상블을 이루며 순탄하게 살 수 있겠지. 그러나 표준에만 맞춘 삶이, 결국에는 죽음 앞에서 '나는 세상에서 어떻게 존재했는가'를 돌아보게 될 나만의 기준에 맞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 점에서 표준만을 좇을 수는 없고, 선택의 순간마다 떠올린다. 저기 빨갛게 물든 버튼을, 여기 초침 돌아가는 소리를.
또각또각 절도 있는 발걸음처럼 들릴 때면 쫓아가고, 삐걱삐걱 고통스런 마찰음처럼 들릴 때면 쫓아내던 그 소리. "남자는 30대가 되기까지 적어도 이거는 ~ 저거는 ~ 일해라 ~ 절해라 ~" 분명 남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지금은 내 안에서 들려오고 있다. 공략법을 따르지 않았다고 망한 인생도 아니고, 박자를 못 맞춘다고 모지리는 아니다. 째깍 소리에 얼마만큼의 권위를 부여할지를 결정하는 주체는 바로 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째깍 소리는 내 안에서 실재한다. 이런 생각이 째깍 소리와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는 삶에 도움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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