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식에 입문한지 6개월된 주린이다. 원래 주식을 비롯한 투자 활동 일체에 관심이 없었는데, 코스피 급등에 끌려서 거의 끝물에 뒤늦게 단물 빨러 입성한 개미투자자가 되어버렸다. 주식거래가 뭐고 코스피가 뭔지 1도 모르던 고등학생 때부터, 워런 버핏 할아버지의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씀에 반복 노출되어 왔기에, 그게 정석이라 여겼다. 첫 2개월 정도는 5개 종목으로 자산을 분산해 지켜봤는데, 손실 구간에서 계속 코스피와 함께 횡보하는 흐름이어서 참 답답했다. 결국 별다른 재미를 못 보고 LG디스플레이에 몰빵하기 위해 다른 4개 종목을 다 손절했다. LG디스플레이의 차트, 관련 뉴스만 확인하고 짱구를 굴리면 된다는 편리함 때문에 행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기업의 행보에 내 자산이 부풀어오를지, 아니면 녹아내릴지의 여부가 달려 있다는 사실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괜히 더 심한 불안의 길을 자처하는 듯한 기분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아래의 포스트를 봤다.
https://blog.naver.com/mosfnet/222296104188

대한민국, 내일의 섬유산업은 맑음!

‘섬유’란, 가늘고 길며 연하게 굽힐 수 있는 천연, 인조의 선상 물체를 의미합니다. 종류에 따라 동물섬...

blog.naver.com

바로 뇌가 동해서 엘디플을 익절하고, 효첨으로 갈아탔다. 당시(3월 말) 내가 바라본 LG디스플레이는 시장성과가 주가에 반영되어 있는 비중이 크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회사가 어느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는 비전은 불투명했다.

비전이 불투명해 보이는 엘디플 장투의 종착지는 해발고도가 그다지 높지 않을 것 같았다.

반면, 효성첨단소재는 무려 '대한민국 기획재정부 블로그'에서 다룰 만큼 비전이 뚜렷한 섬유산업의 선두주자이면서, 현재에도 괄목할 만한 시장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 좋은 투자 종목이었다. 단지 이미 큰 폭의 주가 떡상을 맞았던 종목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급등주의 끝물에 들어갔다가 심하게 데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너무 강하게 잡아끌린 상태였다. 평소에는 들어가서 읽어보지도 않는 블로그 포스트 목록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게시글이 "이거 사 놓으면 오른다!!!"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치 꿈속에 나타난 로또 번호 6개처럼 다가왔다. 나는 효첨에 몰빵하면서 확신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효첨 개미주주가 된 이후 3개월 동안은 정말 재미보다 걱정이 많은 횡보 구간이었다. 효첨이 나아갈 비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하나로 버텼다. 한 친구는 나보다 뒤늦게 주식판에 들어와 나름대로 포트폴리오도 짜서 괜찮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는데, 걔가 "너는 머가리가 깨진 게 분명하다. 효첨 탈출은 지능순 ㅋ 아직도 탈출 안 한 흑우가 있다?" 따위의 말을 할 때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나는 "효첨은 모소대나무다."라는 근거가 없는 확신을 내보이며 애써 태연한 척 반응하곤 했다. 마치 주문처럼 머릿속으로도 모소대나무를 떠올렸다.

그리고 효첨은 그동안의 내 기다림에 보답이라도 하듯, 지난 한 달 간 주가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줬다.

그 친구가 나를 향해 농담 섞어 내던지던 조언들은 요즘 "돈도 많이 벌었는데 오마카세 한 번 가야지"로 바꼈다. 이 글은 나중에 오마카세에서 잊지 않고 그 친구에게 생색내며 주저리 주저리 읊어대려고 기록해두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떠올리지 않으려고 기록한다. 이 주식에 너무 많은 신경을 써왔고, 그래서 애정이 생긴 것 같다. 요즘 부쩍 주식 어플을 수시로 확인하는 이유는 내 자산이 안녕한가 확인하려는 것도 물론 있지만, '내 믿음이 잘 실현되고 있는가' 확인하려는 마음이 가장 크다. 그 감정을 덜어내야 한다.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은 주주가 아니라 임직원이다. 내 관심과 별개로, 효첨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 사업 영역을 잘 개척한다면 내 자산은 장기적으로 안녕할 것이다. 효첨에 응원의 편지를 보낼 게 아니라면, 더 이상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지는 말아야 겠다. 내가 효첨에 넣은 돈 이외의 시간은 오히려 나 스스로의 잠재적인 능력과 성과를 저해하는 투자이기 때문이다.

학생 신분이므로 시드머니가 크지 않아서 정보탐색비용에 비해 그 편익이 작다는 이유로 분산투자 대신 몰빵을 선택했다. 같은 이유로 이제는 내가 직접 시드머니를 벌 수도 있는, 내 인생의 가장 중추적인 모소대나무에 대한 믿음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오늘부터는 저녁 시간에 종가와 투자자 정보창만 확인하자!

효첨은 이미 확고한 비전이 있으니, 이제는 내가 비전을 찾아서 다져나갈 차례다. 비전이 없으면 기껏해야 횡보만 주구장창 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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