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가
몰두할 거리가 필요했다. 기껏 Android용 개발 환경을 세팅해놓고 기본서가 마음에 안 들어, 기본서가 내 마음에 쏙 든 iOS용 앱 개발을 하기로 마음 먹고 구글 해협을 헤매다가 겨우 찾은 알짜배기 정보의 섬. 거기서 알려주는 대로 하다가 파일 하나를 다운 받는데에 2시간 넘게 걸릴 거라는 글을 보고, 그 파일을 내려받으면서 영화나 봐야겠다 싶었다. 보통 그런 마음을 먹으면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만 십 여 분을 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고민이 필요 없었다. 머릿속에 찰칵 떠오른 영화, 바로 이거였다.
# 이 영화를 3분 10초만에 요약하는 방법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 Family of the Year의 <Hero>에 빠져 들었다. 지금도 그렇다. 다만 그때의 이유와 지금의 이유가 달라 보인다. 그때에는 군대에서 전역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영향인지,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가겠다는, 자유로운 해방의 이미지가 깊이 와 닿았다. 지금은 그 이미지보다는 가사 하나하나에 담긴 메시지가 그 자체로 와 닿는다.
But I'm a kid like everyone else.
하지만 난 평범한 녀석에 불과해요.
가장 공감이 가는 노랫말이다. 마음만큼은 다 잘 해내고 싶다. 하지만 책임지지 못할 약속은 하고 싶지 않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도 제대로 감당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엄청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비겁하다는 말을 들을 지언정 지금의 이 마음을 기만하고 싶지 않다. 가장 중요한 약속, 이미 맺은 약속에 집중하는게 먼저라는 마음 말이다. 불확실성과 위험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내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그래야만 할 것 같다.
# 2년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
그때는 'your hero'가 되고 싶지 않다는 가사에 끌렸다. 지금은 애초에 그 누구를 위한 'hero'도 될 수는 없다는 전제도 깔려 있는 듯하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만능'은 머나먼 이야기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무능한 내 모습을 발견하기 싫어서 한 가지 능력을 키우는 길을 이미 택했다. 인생이 출발과 도착의 연속이라면, 나는 기존의 출발을 이어가는 중이고, 어느정도 도착에 이르렀다는 인식과 그로부터 오는 안정감이 있어야 새로운 출발을 염두에 둘 수 있다고 본다. 출발 직후의 또다른 출발은 두 영역에 애매하게 한 다리씩 걸친 꼴이다. 그 상태로 곧 마주할 복잡한 미로 속에서 미아가 된다면, 내가 어느 지점에서 헤매고 있는지에 관한 감각마저 희미할 것 같다. 아직은 평범하니까. 그뿐이니까.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 아주 멋진 말이다. 이 말의 주객을 전도하면 이렇다. "언제나 순간이 우리를 끌어들인다." 이 말도 멋지다. 내 마음이 향하는 대로 순간을 잡지 못했던 지난 날들에 대해, 더는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헤매는 일은 1달 뒤, 1년 뒤, 10년 뒤, 삶의 끝까지 있겠지. 그렇게 헤매는 도중에 마주한 삶의 순간들이기에 애틋한 추억으로 남는 거겠지. 애틋한 만큼만 아픈 거겠지. 그래도 2층짜리 건물 옥상에서 슈퍼맨 놀이를 하다가 떨어지는 것보다는 덜 아플, 딱 그만큼만.
내가 만약 슈퍼맨이었다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1도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평범한 녀석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길 만하다. 근데 괜히, 내가 슈퍼맨이 아니라는 사실이 요즘은 못내 아쉽다. 시간이 지난 뒤에는 슈퍼맨이 되어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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