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의 선택 문제, 총알을 보고 피하는 몸동작으로 유명한 영화. 이 영화에서 다루는 철학적 질문과 대답은,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에 관한 호기심을 키운다. 하지만 자기 전에 한 편씩 본다는 것이, 장면들의 색감이 대부분 어둡다 보니 잠이 많이 와서, 다 보는 데에 일주일은 걸린 것 같다.
# 오라클, 스미스, 그리고 네오
오라클은 매트릭스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다. ‘그’의 존재를 믿고, 네오가 바로 ‘그’라고 믿는 모피어스가 네오를 데리고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도 바로 오라클이다. 그녀는 매트릭스를 관통하는 필연을 점지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오는 빨간 알약을 선택한 이후로 줄곧 두려움에 시달린다. 자신이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오라클은 네오가 ‘그’가 아니라고 말했고, 네오는 혼란스러워 했다. 전지전능한 예언자의 전망이 같은 길을 개척하는 동료들의 기대와 상충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매트릭스의 의도대로 움직이다가, 자유를 얻어 자신의 목적의식대로 행동하게 된 소프트웨어다. 그는 인간을 혐오하며, 네오를 시험에 들게 한다. 그는 한결같이 네오를 Mr.Anderson 이라 부른다. ‘네오’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바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네오에게서 그 상징성을 제거하면 한낱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거대한 시스템에 무력하게 지배당하던 그 인간 말이다.
스미스는 네오에게 묻는다.
왜 포기 않지?
왜 계속 싸우지?
도대체 무엇을 지키려고?
자유, 진리?
평화 혹은 사랑?
다 환상이고 망상이야!
의미 없는 자신의 존재를 합리화하려는 나약한 몸부림이지.
모두 조작된 거야. 매트릭스처럼!
...
왜, 대체 왜 포기 않나?
이런 관점은 오라클에게서 답을 갈구하던 시절의 네오를 겸연쩍게 한다. “오라클은 늘 듣고 싶은 말만 해 준다”라는 나오베의 진술은 이런 관점을 뒷받침한다. 예견된 운명이 한 사람의 주관을 반영하고 있다면, 그것에 운명이라는 지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 그런 운명을 믿는 사람은 자신이 운명의 인도를 받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네오에게 용기의 원천이 되어주던 운명은 매트릭스 시스템 속 전기적 신호만큼이나 덧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오라클은 운명론의 상징이자, 믿음의 근거를 탐색하는 눈과 같다. 스미스는 회의론의 상징이자, 믿음의 의미를 부정하는 머리와 같다. 그렇다면 네오는 무엇을 상징할까? 네오는 스미스에게 답한다.
그게 내 선택이야
그는 무얼 믿을지를 선택한다. 그때부터 근거나 의미는 필요치 않게 된다. 오직 믿어야 할 이유만 있을 뿐이다.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라는 사람, 그리고 "Because 'He' choose to"가 아닌 "Because 'I' choose to."라는 사실. 그 이유라는 것은 마음 속에 있으면서, 마음이 가리킨다. 네오의 답변에 우리말 패치를 적용해 보자.
내 맘이야
"왜 그러는데?"에 대한 답변 1위. 답하기 귀찮아서 둘러댈 때 쓰는 말이, 어쩌면 정답에 가장 가까운 말일지도 모르겠다.
# ‘매트릭스’의 의미
정의 1: 무언가가 발전할 때, 그 환경이나 도구로서 기능하는 요소.
예문 1: "자유로운 선택이 인간의 삶을 이루는 matrix다" (출처: Oxford Language)
'영화가 남긴 여운을 담는 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대체 어쩌다..? <없는영화: 당신의 이야기> (0) | 2022.05.31 |
---|---|
지금 누가 째깍 소리를 내었는가? <틱,틱...붐!> (0) | 2022.05.19 |
희망과 기만의 경계에서 <쇼생크 탈출> (0) | 2021.12.18 |
For Rest, Run. <Forrest Gump> (0) | 2021.10.24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0) | 2021.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