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깍.
째깍.
잠이 오지 않을 때 의식하게 되면 가장 고통스러운 소리. 아날로그 벽걸이 시계의 초침 소리가 고막을 두들기는 또다른 순간은 바로 시험을 치를 때다. 이때 째깍소리는 저 멀리 강의실 앞에 있는 시계에서 나는 게 아니라, 조급함을 느낀 두뇌가 상황에 맞춰 음성 지원을 해주는 것일 때가 많다. 밤의 째깍 소리는 잠이 오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차라리 낫다. 낮에는 그런 방해요소 속에서도 무언가를 해내야 하니까.

주인공은 30살 생일을 앞두고 째깍 소리에 시달리고 있다. 청춘이 끝났을 때 이뤄놓은 것이 하나도 없는 삶은 그에게 정말이지 끔찍하다. 동시에 주인공은 30살이 되기 전 마지막 뮤지컬 리허설을 준비하며 째깍 소리에 시달리고 있다. 정신은 점점 흐리멍텅해지고 날은 점점 밝아오는데, 아무런 진척이 없다. 끔찍한 상상이 현실이 되려 하고 있다.
주인공이 겪은 이같은 상황은 많은 경우 다가오는 새해가 달갑지 않은 이유, 떠나가는 오늘을 붙잡고 싶은 이유가 된다. 뒤처지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달아나는 시간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만 같으니까, 시간이 나와 함께 멈춰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 순간에도 째깍 소리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들려온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이 째깍 소리를 불붙은 심지가 타들어가며 폭발하기 직전의 소리 같다고 말한다. 그는 절박하다. 케이크에 꽂힌 기다란 초 3개에 붙은 불꽃을 끄는 순간이 곧 심판의 날이 될 거니까. 그때도 지난 몇 년과 다름 없는 모습에 머물러 있다면 구원은 없을 테니까. 정말이지 끝장이다.
속이 타 들어가는 긴장 상태. 내겐 너무나 익숙한 것이다. 언젠가, 가능한 한 빨리, 새로운 궤도로 도약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살아가고 있다. 지금 내가 선 땅이 더 이상 정상 궤도가 아니라, 도태의 공간이 되는 시기가 지금 이 순간에도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진작에 도래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조너선 라슨의 이야기를 보며, 그 피말리는 순간을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째깍소리에 시달리고 있는 나는, 발사대 위에 오른 로켓인가, 아니면 로켓을 발사대 위에 올려놓은 사람인가?
만약 내가 로켓이면, 카운트다운이 끝났을 때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나는 공중에서 폭사할 것이다. 주인공과 내가 두려움을 느낀 이유는 지금 들려오는 카운트다운이 곧 삶의 모든 의미를 앗아가는 시한폭탄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중요한 순간마다 ‘내가 시험대 위에 올랐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며 살아 왔다. 많은 실패를 경험했는데도 아직까지 잘 살아있는 것을 보면 그 생각이 틀린 게 분명하다. 실제 실패는 항상 기대 보다는 덜 처참했다. 실패의 순간 터져버리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니까.
시험대 위에 오르는 것은 언제나 나의 행동, 작업물,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었다. 실패한 사람에게 건네는 물음이 “너 큰일났다. 이제 어떡할래?”가 아니라 “그렇게 돼서 유감이야. 이제 뭐 할거야?”인 것처럼, 다음 로켓을 만들어 쏘아올리면 그만이다.
째깍.
째깍.
커다란 폭발음이 일고 난 뒤에, 질끈 감고 있던 두 눈을 다시 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째깍 소리는 시한폭탄이 아니라 로켓 발사대에서 나는 소리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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