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는 제목의 컨텐츠가 유튜브 뮤직 어플에 표시되어 있다. 한국말로 '2022년 돌아보기'로 번역할 수 있는데, 벌써 2022년을 돌아볼 때가 온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올해 1000시간, 하루 평균 3시간 동안 노래를 틀어놨구나 하루에 30분씩 들으면 윤하를 듣는 사람 중 상위 0.1%구나 많이 들은 아티스트, 많이 들은 음악, 납득이 간다 ???
내가 유튜브 뮤직으로 들은 노래의 8할은 알고리즘의 추천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서 나의 음악적 성격(?)을 MBTI처럼 뽑아내는 게 별로 와 닿지 않았다. 음악 추천 알고리즘이 80% 기여하여 만들어낸 앱 이용 데이터를 가지고 데이터 처리 알고리즘이 결과를 내 놓고, "이게 당신입니다" 하는데, 내가 '직접 선택한' 음악을 기준으로 한 건지 아니면 자동 추천된 것을 포함하여 '스트리밍한' 음악을 기준으로 한 건지 의문이다. 후자라면 유튜브 뮤직이 부여해준 음악적 MBTI는 믿을 만한 게 못 될 것이다.
내 음악적 MBTI가 신뢰할 만한지 여부를 떠나서, 이 내용이 재미를 더하는 요소는 맞는 듯하다. 단순한 통계적 사실보다는 그 정보를 분석하고 유형화한 것이 더 큰 흥미를 유발하는 것 같다. "당신은 올해 가수 윤하의 노래를 가장 많이 들은 0.1%에 속합니다" 라는 사실이 주어지면 '그으래요...' 하고 말기 쉬운데, "당신은 유행하는 노래를 주로 듣고, 정말 주로 듣는 노래 위주로만 듣는 편이네요" 라는 분석이 주어지면 '그런가???' 하고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통계적 사실은 나의 과거를 기반으로 하여 과거에 머물러 있지만, 그 분석 결과는 한 발 나아가 현재의 나를 가리키는 느낌이다. 그래서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유튜브 뮤직과 함께한 2022년은 어땠는가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이 기획은 참 효과적이다. 매월 초에 계좌에서 구독료가 빠져 나간 걸 확인하고, 버스를 기다리거나 하면 손가락부터 어플을 찾아가는, 아무 생각 없이 습관대로 앱을 이용하는 사람이 생각을 하게 만드니까. 2023년의 Recap은 어떨까? 내가 주로 듣는 음악에는 변화가 있을까? 내 음악적 MBTI는 그대로일까? 같은 궁금증은 매달 빠지는 요금을 당연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명분이 된다. 혹시라도 멜론이나 지니, FLO 처럼 아직 구독하지 않은 대안들에 견주어 보게 되더라도, 일종의 추억을 제공한 유튜브 뮤직이 일단은 이런 흥미거리 측면에서 차별화된 서비스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
1년 중 일부 기간 동안만 진행하는 기획이고, 음악 스트리밍이라는 주요 기능에 비하면 매우 사소한 기능이지만, 그 작은 차이가 기존 유저의 잔존 여부에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겠다.
찾아다니는 일. 숨바꼭질에는 암묵적이면서 불명확한 시간 제한이 있다. 게임이 끝나는 그 '언젠가'. 머릿속에서는 게임 승리의 제약 조건이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외로운 탐색 작업을 그리 오래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약속처럼 다가온다.
짧은 시간 동안 어느 한 기업의 교육 프로그램 합격을, 긴 시간 동안 어느 한 기업으로의 취업을 좇는 일. 물론 내 인생의 굵직한 목표, 커다란 변화의 계기가 될 일들. 하지만 그것들이 전부가 될 수 있을까? 마음 부스럭거리는 소리 크게 들리면 다시 이어가게 될 탐색 작업. '그래도 언젠가는 제 발로 나와주겠지' 하며 찾아다녀온 '너'가 누구였는지도 잊어버리게 될, 먼 훗날에도 이따금씩 큰 소리를 내며 부스럭거릴 마음.
유년 시절의 놀이가 성년이 되어 할 일의 연습이라면, 가까운 옛날에 즐겨 하던 숨바꼭질은, 거의 모든 일들의 연습인 것 같다. 연습을 조금 더 열심히 했더라면 지금 더 쉽게 해냈을까?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라는 과학 시간의 배움이 떠오른다. 그리고 학교 앞 기절초풍맛 양념닭꼬치를 먹을 때 찔끔 나오던 눈물, 그것마저 즐기던 내가 그때 받았던 충격까지도. 하루하루 감당할 수 있는 아픔이 벤 인생을 만나는 것이라면, 그 아픔이 인생의 풍미를 한층 더 끌어올려주는 것이라면, 매콤한 인생은 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달콤한 사랑은 어떨까? 고통 없는 사랑이 과연 가능할까? 사랑의 상실을 사랑의 고통이라 말할 수는 없겠다. 사랑이 그 자체로 아픔을 주는지도 잘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느끼는 아픔은, 사실 그것이 인생의 큰 문제와 너무나도 긴밀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반면 달달하기만 한 사랑은 어쩌면, 인생의 제약과 요구로부터 벗어나야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 없이 사는 사람을 가장 가엾게 여겨야 한다." 덤블도어 교수가 볼드모트의 내면을 보여주며 해리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다. 노랑통닭의 네 마디 문구가 인생과 사랑을 생각하게 만든 11월 셋째주 목요일은 세계 철학의 날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꿈을 향한 사랑, 자식을 향한 사랑이 교실 안에서, 교문 밖에서 인생의 기절초풍맛을 만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 보니 저 문구는 '맛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맛을 만드는 사람'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유가네 닭갈비철판볶음밥도 매워서 못 먹는 사람이 갑자기 불닭볶음면을 즐기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눈앞의 후라이드 치킨을 그냥 먹을지, 매콤달콤 소스를 찍어 먹을지를 선택하기는 쉽다. 결국 인생도, 사랑도, 자기가 맛보고 싶은 대로, 그 사람에게 맛보여주고 싶은 대로, 직접 맛을 더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많은 경우 선택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비닐 포장을 뜯어서 종지에 부어놓는 것보다 살짝 더 매콤할 뿐이다. 아주 살짝.
한 10년차 프로게이머가 이번 세계 무대에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일들을 해내며 남긴 한 마디.
지금껏 들어본 그 어떤 말보다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고, 그 어떤 말보다 강한 떨림을 준다.
마음의 변덕이 오죽 심하면 습관이 성공의 열쇠라고 말들을 할까. 마음의 고통은 되도록 피하고 싶기에 성공의 문 두드리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마음에 휘둘리다가 어느샌가 무력해진 자신의 몸짓을 발견하기도 하고, 마음을 지키려다가 어느 순간 무심한 표정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올곧지 않은 마음의 명령을 거절할 줄 아는 것, 온갖 종류의 부정적인 자극들 속에서도 마음을 올곧게 다스릴 줄 아는 것. 그가 10년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기적같은 이야기, 많은 사람들의 인정, 수천 일을 쌓아 온 끝의 성취감보다 부러운 것은, 그가 줄곧 지녔을 마음가짐이다. A=1, B=2, … Z=26 이라고 할 때 이 알파벳들을 조합해서 100점이 나오는 단어가 ATTITUDE 라는 십수 년 전의 짤막한 배움이, 다시 떠오르게 해 준 그의 한 마디다.
교내 프로그래밍 경진대회에서 2등을 한 줄 알았는데, 우리가 1등이었다. 마지막 문제를 풀이한 시간만 놓고 보면 우리가 2등이었지만, 그 이전까지의 문제들을 우리가 훨씬 더 빨리 풀이해서, 모든 문제를 다 합산했을 때 우리가 더 앞선 것이었다. 대회 당일 날에는 나쁜 변수가 너무 심하게 작용했지만, 그때는 몰랐던 좋은 변수가 존재했구나 싶다.
아는 사람들 앞에서 상을 받아본 지 정말 오랜만이다. 선명하게 남은 가장 최근의 기억이, 5년 전에 대대원들 앞에서 우수 독후감 상을 받았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단상 위에 서는 것이 쑥스러운 기질은 역시 그대로지만, 기분이 좋다는 것 역시 변하지 않았다.
상장과 상금이라는 보상을 받고 나니, 지난 1년 반을 돌아보고 싶었다. 물론 자랑할 만한 순간은 결과를 인정받은 오늘이지만, 계속 기억에 남기고픈 순간은 과정을 함께 즐겼던 몇 번의 어제 같은 날들이다. 어설픔, 어지러움, 막막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곧 웃었던 우리들. 그것 역시 알고리즘 문제 풀이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얻지 못했을 순간들. 아마 3주 뒤의 ICPC 본선보다 오늘이 더 기쁜 날일 것 같다.
뜻밖의 이벤트, 뜻밖의 상, 그리고 뜻밖의 보람에 행복했던 오늘이다. 불과 한 달 전에는 이런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는 줄도 몰랐다. 반 년 전에는 내가 팀의 일원이 되어 프로그래밍 경진대회에 나갈 줄도 몰랐다. 학교 과제 때문에 처음으로 백준 문제를 풀어본 일 년 반 전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꿈에 가까워지지 않는 것만 같을 때마다 스티브 잡스의 말을 떠올리곤 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두 개의 점을 잇는 일이다. 선택을 한다는 것은 점을 찍는 것과 같다. 그런데 선으로 연결될 두 점이 무엇인지는, 결코 미리 알 수 없다." 오늘 너무나도 선명한 한 개의 간선을 본 것 같다. 다음 방점은 어디에 찍을까? SSAFY에 지원하며 행복 회로를 돌려 본다.
“전화 좀 빌려주세요.” 오늘 가게를 보던 중 처음 보는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는 내게 부탁했다. 남루한 차림과 안절부절 못하는 행색의 중년 남성.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그분이 전화 걸려고 하시는 번호를 묻고 입력해서 건네드렸다.
사실 전화 빌려달라는 그분의 말씀도 겨우 알아들었던 터라, 전화로 뭐라 말씀하시는건지 거의 알아듣기 어려웠다. 대충 추석을 맞아 문안 인사를 전하려고 전화를 하시는 듯했는데, 통화는 바로 끊어졌다. 그분께서는 어떤 무안한 기색도 없이 곧바로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거셨다. 그는 덜덜 떨기 시작했고, 두 번째 통화는 연결조차 되지 않자, 이제는 쪼그려 앉아서 덜덜 떨었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엔 온갖 시나리오가 떠오르며 나도 덩달아 심장이 떨렸다. 아직 바꾼지 3일도 안 된 새 폰인데.. 계속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는 나머지 화가 나서 내 폰을 집어던지면 어떡하지? 손해배상이나 받을 수 있으려나. 그럴 땐 경찰을 불러야 하나. 그런데 만약 대충 전화 돌리는 척하다가 들고 도망가려는 속셈이라면 어떡하지? 그래도 내가 전속력으로 달리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전화를 거는 척하다가 내가 한 눈 판 사이에 SMS를 통해 악성코드가 포함된 링크를 수신받아 접속하면 어떡하지? 나는 다른 손님들의 계산을 도와드리면서도 내 폰의 통화 다이얼을 열심히 누르고 있는 그 사람에서 두 눈을 떼지 못 했다. 손님들도 그 사람을 신기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셨다.
이젠 너무 심하다 싶을 때쯤 그 사람에게 다가가, 전화를 돌려달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 한 번만 더 걸겠다며 전화를 걸더니, 5초도 되지 않아 통화가 뚝 끊겼다. 나는 그의 손에서 전화기를 거의 빼앗다시피 하며 가져왔다. 그는 공중전화를 써야 된다며 300원 좀 달라고 했고, 참다 못한 아버지가 1000원을 주자, 물 한 잔만 달라고 했다. 물을 벌컥 벌컥 마신 그는, 로또 번호가 오늘 나오냐는 생뚱 맞은 질문을 던지고는 가게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제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나는 호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전화 한 번 빌려주는 일이, 어떤 상황에서는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일이 될 수도 있구나. 물론 내 시나리오가 실제가 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다. 아버지는 그 사람이 나가자 마자 말씀하셨다. “전화기 같은거 함부로 빌려주지 마라.” 그 함부로라는 것이 참 애매한 말이지 싶던 찰나에 옆 가게에서 방금 그 사람이 똑같은 소란을 벌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그 사람은 추석을 맞아 잘 닿지 않는 9개의 연락처로 전화할 기회를 얻은 것일까, 아니면 지역번호만 062로 통일하고 아무 번호나 막 누른 다음 자연스럽게 작은 호의들을 챙긴 것일까? 괜히 신경쓰이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