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사진 작가 숀 오코넬은, LIFE 잡지사의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을 보내며 "거기에 삶의 정수가 들어있다"라고 말한다. 오프라인 LIFE 잡지를 폐간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하기 위해 파견된 구조조정 책임자는 정수(Quintessence)라는 단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부하 직원이 귀띔해주니까 겨우 본질(Essence)이라고 알아차린다. 하지만 두 단어는 미묘하게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 미묘한 차이를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챗지피티에게 물어봤다.

질문 | '본질'과 '정수'라는 두 단어의 뜻은 어떻게 달라?

답변 | 본질빵의 밀가루처럼, 무언가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 요소를 말해. 반면 정수가장 훌륭하고 완벽하게 구워진 빵처럼, 무언가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상태를 말해.

 
어라라..? 내가 어림짐작하고 있던 것과 많이 다르네. 그렇다면 내가 요즘 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질문들은, 삶의 본질과 정수, 둘 중 무엇에 관한 것일까? 챗지피티의 도움 없이 직접 해 보자.
 

  1. 나의 성장과 커리어, 잠재적 보수를 고려할 때, 지금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까, 이직을 준비해야 할까?
  2. 지금 여러 요인으로 노동시장의 초과 공급이 심각하고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데, 어떻게 경쟁력을 갖출까?
  3. 부모님께서 더 이상 경제활동을 못하게 되셨을 때에 가족을 무리없이 부양할 수 있으려면, 지금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요약하자면 '시장에서 인정 받고 돈도 많이 벌어서 가족을 든든하게 지탱하는 나'의 '존재 요건'이 무엇일까에 관한 고민이다. '레드오션 마켓에서 끗발 좀 날리는 슈퍼 알파메일'을 삶의 정수라고 간주하자니,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하다. 영화의 말미에 포착했던 삶의 정수가 지닌 구체성과 생생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밀가루가 풍족하게 쌓여있는 창고 키를 사막에서 찾아내자는, 본질을 향한 맹목적 구호에 가깝다. 절대 부족할 일 없이 빵을 많이 만들 수 있도록 말이다. 빵의 풍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무슨 킥을 넣을지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는, 안정적인 생존에 한정된 고민이다. 본질을 갖춰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리다 보니 요즘 내가 분에 넘치게 머리가 무거웠던 게 아닐까. 어느 길로도 두 발짝 이상 발걸음을 내딛지 못할 만큼.
 
그렇다고 삶의 정수를 찾아보자니 어렵다. 다만 이제는 좀 가벼워진 마음으로 질문에 직면해 볼 수 있겠다. 이 길이 삶의 본질을 채워줄 길이 될지 여부는 미리 알 수 없는 거니까. 본질을 들먹이며 무언가를 망설이거나 주저한다면, 그것은 핑계다. 어떤 선택을 내리더라도, 그 길에 충실한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 그거면 된다. 그 과정에서 마주할 구체적인 내 모습과 경험들 중 일부는 분명히, 삶의 정수가 될 것이다. 먼 훗날 내 주마등에도 삶의 정수가 담긴 사진 한 장 띄울 수 있길 바란다.
 

 
 
삶의 본질을 추구하며 분투하는 이들에게, 당신은 이미 삶의 정수라며 찬사를 건네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떠올리며.

 
자기소개를 하면 대개
나에 대한 정보로서 납득되기 쉬운
익숙한 라벨부터 꺼내 놓는다
이름, 나이, 거주지, 학교, 직업.
그러고도 모자란 분량을 채우며
공통 분모를 찾으려고 꺼내 놓는
취미 활동, 음악과 음식 같은 취향들.
 
그러고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내가 이렇게 재미없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이 들 때 이 시를 떠올릴 수 있다면.
 
나를 채우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은
대개 소중한 것들이어서
꺼내놓는다는 게 왠지 조심스럽고,
그게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떠오르지 않는 거 아닐까?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라고 말을 하는 그 순간에는.
 

오늘 만나는 삶이 내가 꿈꾸던 삶보다 작을지라도, 그것을 하찮게 여기지 말자

그 작디 작은 삶마저 겨우 붙잡고 애써 끌려가고 있을지라도, 그런 자신을 초라하게 바라보지 말자

날이 춥다고 “5분만 더” 하며 이불 속에 숨지 말자

무슨 일을 하든, 어려운 일이든 잘 모르는 일이든, 능히 해내리라 생각하고 그 생각에 나를 맞추자

무거운 발걸음이든, 볼품 없는 삽질이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 몸짓을 인정해주자

이 길이 커다란 세계로 이어지지 않게 될지라도,
여기서의 처절한 몸부림이 끝나지 않을지라도,
끝내 박수 받지 못하게 될지라도,
지금 당장은 내 길이니까,
그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내 이야기니까,
내가 사랑하는 수밖에.

https://youtu.be/ilRIJt5tQSM?si=1YtfuAA0rVoKQExJ

유튜브 쇼츠를 보다가 울림을 주는 영상 하나를 만났다.

 

https://youtube.com/shorts/wXMZ5R4GScE?si=CJD_rS1z8l4uAlxv

 

영상에서 하얗게 빛나는 작은 정사각형 조각은 경이(Wonder)를 의미한다. 처음 조각들을 배열할 때에는 경이가 들어갈 공간이 없다. 대신에 사각형 나무 틀(Frame)에 딱 맞아 떨어진다. 관점을 달리 하여, 경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면서 조각들을 배열하니 마찬가지로 사각형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사각형 나무 틀에 완전히 딱 맞아 떨어지진 않고, 약간의 이격이 있다.

 

삶(Life)을 생각하자면 때로는 어느 한 순간 혹은 바로 지금을, 때로는 그런 모든 순간들이 모인 전체 혹은 흐름을 바라보게 된다. 영상은 후자, 즉 거시적인 부분을 계획할 때 고려할 수 있는 두 가지 대안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교육, 일, 준거 집단 같은 일생의 구성 요소를 틀에 딱 맞게 배열하는 것. 두 번째는 틀에 딱 맞지 않더라도 경이로 채워놓을 공간을 마련하는 것.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따지기 보다는, 그저 무엇을 택하는 것이 나에게 어울리고 이로운 것인지 따져 보고자 한다.

 

여기서 틀은 여러 가지 삶의 제약 조건을 나타낸다. "살아가면서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달성해야 하는가?" 제약 조건의 충족을 위해 사람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되곤 한다. 하나만 어긋나더라도 전체적인 배열이 망가져 버리니까. 이같이 틀에 엄격히 자신을 맞추는 삶에서 내가 가장 많이 마주하는 감정은 불안감과 조바심이다. 행복이나 자기 만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여기서 경이는 여러 가지 삶의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틀을 구성하는 조각들 각각에서 의미를 발견할 가능성. 예정에 없던 조각을 갖게 되더라도 그에 맞춰 배열을 새로 바꿀 가능성.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꾸준히 지속하게 해 줄 동력을 얻을 가능성. 이같은 가능성은 몰입과 일탈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몰입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성과 내기'를 위한 뼈를 깎는 노력 같은 것이 아니다. 그 활동 자체에, 그 활동과 나 사이의 관계 속에서 '나'를 포착하는 것이다. 이러한 집중 속에서 메타 인지가 향상된다고 본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일탈은 산책, 운동, 여행 등의 외피를 띠고 있는데, 결국 배회(Wander)하는 시간이다. "당면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 또는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 영화, 음악 등을 찾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시간, 비움의 시간이다. 나는 이런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휴식 없는 운동이 고된 것처럼, 여유 없이 몰아치는 일상은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어 시간에 '액자식 구성'이라는 개념을 배운 기억이 있다. 쉽게 말하면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고 했던가. 어찌 됐든 나는 내 (삶의) 이야기를 보기 좋은 액자에 담아서 공유하고 싶다. 그게 남은 삶을 잘 살아가야 할 중요한 이유 중 한 가지다. 그러다 보면 마치 액자를 이미 정해진 사이즈로 주문 제작해 놓고 취소나 환불이 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곤 한다. 조금의 이격 때문에 액자에 내 삶을 딱 맞출 수 없게 되어 가는 것 같을 때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제는 벗어던질 필요가 있다. 그런 종류의 스트레스든, 정해진 틀에 딱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든.

 

대신 경이를 위한 공간을 꼭 마련하자. 이미 마련한 틀에서 다소 벗어나게 되더라도 말이다. 영상 속에서 경이를 나타내는 조각이 하얗게 빛나고 전체 그림의 중심에 있는 것에는 함의가 있다. 흰색을 흔히 '무색'이라고 말하지만, 흰색 빛은 모든 색의 빛을 포함하는 빛이다. 경이를 위한 공간을 캘린더에, 머리와 마음 속에 비워놓는다면, 앞으로 맞닥뜨릴 일련의 경험과 과제 속에서 중심을 잡고, 나만의 해석과 해법을 구성하고 실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것이 어떤 조각이든 간에 말이다.

잼민이 시절에 주말이면 가족들 다같이 사직운동장으로 가서 자전거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곤 했다. 거기서 네발 자전거로 시작해서, 어느 순간에는 보조 바퀴를 떼기 시작했고, 그때 당시 기어 자전거라고 불리며 내 체격에 비해 다소 큰 자전거를 타곤 했다. 자전거를 바꿀 때마다 더 짜릿한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군대 때 가게 된 첫 훈련에서부터 나는 '자전거 = 자유'라는 막연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양평 근처에서 탱크가 강을 건너는 훈련이었는데, 훈련장 바로 옆으로 자전거길이 나 있었다. 당시 소대에서 막내였던 나는 이른바 조뺑이를 치고 있었는데, 허리가 아파서 잠깐 기지개를 키던 찰나에 자전거길 위로 몇 대의 자전거가 쌩 달리며 지나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 타고 시원하게 달리던 그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고, 전역하면 나도 그 느낌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전역 이후에 여행지의 자전거 대여점에서, 아니면 간간히 온천천 무료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타곤 했는데, 매번 즐거웠다.
 
5월 초에 자전거 국토종주를 계획중인 지인의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처음 자전거 국토종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삘이 강렬하게 꽂혔던 나머지 온갖 관련 유튜브와 블로그를 보면서, 빠른 시일 내에 나도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내 자전거를 가지게 되었다.

 

5월 19일

더보기

안녕 토마스, 아니 도마스 자전거

2022-23 도마스 케이던스 H21 하이브리드 자전거. 구매 링크는 https://www.gorgotago.com/shop/view.php?index_no=8194&enterc=naverpay&NaPm=ct%3Dm0mk394f%7Cci%3Dcheckout%7Ctr%3Dppc%7Ctrx%3Dnull%7Chk%3D184011d1939cf82afb0f0b39dd10f97dd490b085#prdSpec

가성비 GOAT 자전거라는 후기글이 많아서 구입했다. 본래 옷도 무난한 색을 선호하는 편인데, 노란색으로 확 튀는 이 자전거는 느낌이 마치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범블비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밝은 색이라서 프레임의 오염 상태도 한눈에 보이고, 도로 위의 운전자 눈에도 잘 보여서 더 좋다고 생각했다. 이 자전거를 처음 받은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외할머니께서 "자전거 반품 안 되나? 취업을 해서 차를 살 생각을 해야지, 뭐 할려고 자전거를 사. 차라리 반품하고 차를 사. 돈 모자라면 이 할미가 돈 보태줄게." 묵직한 팩트를 맞고 흐르려는 눈물을 참고, 하려던 얘기를 전하지 못하고, 자전거 출정식을 하러 갔다. "이 자전거 30만원도 안 하는 건데 돈 얼마나 보태주게?"라는 말 따위 꺼낼 수도 없는 백수라서 울컥했다. 시작부터 완전 산통 다 깼네.
 

맑은 날의 온천천과 수영강 자전거길을 '내 자전거'로 달리니 기분이 나아졌다. 국토종주 가기 전에 자전거를 오래 타는 연습을 해 둬야 한다는 후기글을 많이 봐서 이때 이후로도 자주 자전거를 탔다.

6월 2일

더보기

인천으로 출발~!

이미지 출처: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20418.010020801160001

국토종주 코스는 인천에서 출발해서 부산에 도착하는 방향으로 선택했다. 자전거와 함께 이용 가능한 교통 수단은 고속 버스뿐이었는데, 인천-부산 이라는 거리를 종주가 끝나고 버스로 이동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스를 타면 탈수록 부산에 가까워진다는 의미가 집이 가까워진다는 의미로 곧바로 와 닿는 게 힘이 많이 될 것 같았다. 기간은 가장 레퍼런스가 많은 4박 5일로 잡았다.
 

처음으로 타본 프리미엄 고속버스. 운 좋게 차량의 짐칸에 여유가 많아서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자전거를 실을 수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고속버스를 만날 때까지 차표를 사고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그건 상상만 해도...

인천에 도착해서 자전거 상태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어 보인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차도를 이용해야 했다. 인천 시내는 처음이었고, 차도를 이용한 경험이 많이 없던 탓에 자전거 교통 법규도 익숙치 않아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라이딩이었다. 숙소에 도착하기 직전에 스마트폰 거치대와 핸들 바를 결합시키는 나사가 헐거워진 나머지 빠져버렸고,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져 액정 보호 필름이 깨졌다. 이때부터 경각심이 생겨서 자전거를 타기 전에 자전거에 결합된 장비의 연결을 체크했다.

6월 3일

더보기

인천에서 양평까지

서울쪽 오면 늘 점심 메뉴로 육쌈냉면이 떠오른다. 첫날인 만큼 든든하게 배 채우고 시작했다. 날이 쨍하니 더웠는데, 맛이 시원시원하니 좋았다.

출발점인 아라 서해갑문 인증센터에 도착해서 국토종주 인증수첩을 발급받았다.

출발선이 꽤 웅장하게 꾸며져 있어서 사진을 안 찍을 수 없었다.

서울에 진입하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다. 서울에 저런 멋진 산도 있었구나. 무슨 산인지는 모르겠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보며 서울에 온 걸 실감했다.

한강 여의도공원 근처 편의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국룰로 정했다. 탁 트인 경치를 보며 마시는 국물맛이 참 좋았다.

이게 아마 잠실대교 위였던가. 대낮에 보는 사우론의 탑은 창문이 아주 매끈하게 잘 닦인 느낌이었다.

서울에서 빠져나갈 때즈음 찍은 사진이다. 햇살에 비친 먼지 같은 게 다 하루살이들이다. 근처에 숲이나 물가가 있으면 날벌레가 많이 꼬였다. 이 다음에 아이유 3단 고개라고 불리는 3단 업힐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유의 "좋은 날"을 한 곡 다 듣기도 전에 끝날 것 같은, 극히 짧은 구간이었다.

뜻밖에 야간 라이딩을 하게 되었다. 사진은 하늘이 밝게 나왔지만, 실제로는 어두워서 라이트를 키고 자전거를 타야 했다. 불빛에 이끌린 날벌레들이 별처럼 쏟아졌고, 내 고글에 들이받으면서 나는 타다닥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6월 4일

더보기

양평에서 충주 수안보까지

양평 시내의 숙소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 사진에 나오는 뒷산 어딘가에 신병 교육대가 있었다. 거기서는 양평 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저녁무렵이면 시내의 가장 높은 빌딩에서 불빛 두어 개가 깜빡였다. 그걸 볼 때면 사회에 대한 그리움이 막연히 생겨나곤 했다. 지금은 똑같은 빌딩을 보며, 그리고 외박을 나오면 놀러다녔던 저 시내를 보며, 묘한 애틋함을 느끼고 있구나. 하는 감상에 빠져 있다 보니 해가 중천이었다. 늦었다.

양평에서 이포보 가는 길에 만난 한적한 자전거길. 내가 상상한 국토종주 자전거길에 가장 가까운 풍경이었다.

여주보에서 강천보 가는 길. 괜히 여주 평야가 유명한 게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산이 멀리 있고 평평한 땅이 드넓었다.

강천보에서 비내섬 가는 길. 놀랍게도 강원도였다.

비내섬 인증센터 근처의 어느

카페에서 파는 매실 에이드의 맛이 정말 좋았다. 여기서 남은 시간과 내 평균 속도를 계산해서 숙소를 골라 예약했다.

계산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어두운 밤이었다. 다행히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아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다. 다만 멈추면 모기까지 달라붙기 때문에 계속 달려야만 했다.

수안보 도착하면 맛있는거 먹을 기대를 하고 도착했는데, 저녁 10시 무렵이었음에도 문을 연 식당이 없었다. 네이버 지도에는 다 영업중이라고 돼 있었는데, 온천욕으로 유명한 지역으로 여름은 비수기라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도 숙소에 비비큐 가맹점이 딸려 있길래 음식을 양껏 주문했다. 로봇이 방문 앞까지 와서 서빙해주는 게 신기했다. 음식 본연의 맛이 좋았고, 점심 때 먹은 육개장 사발면이 오늘 끼니의 전부였던 터라 싹 다 비울 수 있었다.

6월 5일

더보기

충주 수안보에서 경북 의성까지

부모님 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메뉴로 유명한 이 지역의 식당에서 한 끼를 못 해 보고 가면 아쉬울 것 같아서 아침을 사 먹었다. 역시 비수기인 탓에 오전 9시가 넘은 시간이었음에도 영업을 하는 식당이 없어서 동네 한 바퀴 돌다가 찾은 식당에서 순두부 찌개를 먹었다. 담백하고 심심했다. 오늘 빡센 언덕 두 개를 넘어야 했기에 영양을 생각하며 싹 다 비웠다.

소조령과 이화령 모두 사진 속 언덕의 경사도에서 큰 편차 없이 유지되는 느낌이었다. 다만 경사 구간의 길이가 문제였다. 소조령은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오를 만 했는데, 이화령은 초심자인 나로서는 끌바를 할 수밖에 없었다.

끝날듯 끝나지 않던 이화령 고개를 넘고 나니 만난 뷰. 어제까지 우리 강의 아름다움을 감상했다면 오늘은 우리 산의 차례였다. 왜 국토종주 자전거길이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즐길 수 있다고들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온음료를 보충하러 들어간 매점에서 팔던 청포도 스무디. 이번 여정에서 마신 것들 중 최고의 맛이었다.

저 터널을 기점으로 충청도와 경상도가 나뉜다고 한다. 벌써 경상도라니, 집이 가까워져 오는 듯해서 좋았다.

낙단보 근처의 어느 한식뷔페에서 밥을 푸짐하게 먹었다. 한식뷔페라기 보다는 자율배식하는 기사식당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래도 꿀맛이었다.

자전거 보관까지 가능한 숙소를 찾는 게 쉽지 않다 보니, 무인텔에서의 1박이라는 경험도 살면서 처음으로 해 봤다.

 

6월 6일

더보기

경북 의성에서 경남 합천까지 

경상도라고 해서 그리 가까워진 건 아니구나 하는 걸 깨닫게 해주는 표지판이었다. 그저 하루빨리 낙동강하굿둑까지 남은 거리가 두 자릿수로 떨어지기만을 바랐다.

칠곡보에서 강정고령보 가는 길. 강 위에 만들어진 자전거길이었는데, 노면의 상태가 좋아서 달리는 맛이 좋았다.

달성보에서 합천창녕보 가는 길. 저 구간은 대체로 짧지만, 길의 굴곡이 상하좌우로 다이나믹했다. 15도 넘는 급경사를 몇 번 만나서 다 끌바를 했다.

합천창녕보에서 숙소가 있는 적교장으로 가는 길. 해질 무렵의 오렌지빛 하늘은 빨리 달려야 야간 라이딩을 피할 수 있다는 걸 뜻하지만, 사진에 담고 싶었던 풍경이다.

이 근방에 사는 분들 중 암벽등반가가 있다면 저길 연습처로 많이 삼을 듯하다.

적교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뜻밖에 외국인 투숙객이 많아서 남는 방이 없었다. 그런데 다른 숙소로 가려면 수십 킬로는 더 가야 하는데 이미 깜깜한 저녁인데, 가로등은 거의 없고 자전거 전조등은 수안보에서 출발할 때 호텔방에 깜빡 두고 온 터였다. 참 난감하던 차에 주인 분께서 직원용 숙소 같은 곳에 재워주셨다. 감사함과 안도감과 함께 근처 식당에서 먹는 돈까스는 정말 풍요로웠다.

6월 7일

더보기

경남 합천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오늘은 4박 5일 여정의 마지막날이기도 하고, 주행 거리가 가장 길기도 하고, 종주 인증을 받으려면 영업 종료 시간인 5시 30분까지 을숙도에 도착해야 해서 오전 6시에 길을 나섰다. 아직 해가 낮게 떠서 그리 덥지도 않고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길 위에 차가 없고 사람도 없고 자전거도 없어서 가장 한적했던 길이다.

이화령 고개와 함께 악명 높은 업힐로 손꼽히는 박진고개. 해가 점점 높아지면서 햇빛을 견디며 오르기가 버거웠다. 끌바가 나를 선택했다. 오르는 길에 도로 외벽을 가득 채운 낙서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번 국토종주에서 만난 업힐 중 가장 파멸적인 경사도를 자랑하는 영아지고개. 정말 딱 보자마자 어이를 상실했다. 이번에도 끌바의 선택을 받고 오르는 길에 본 표지판에는 대충 20을 훌쩍 넘기는 경사도가 적혀 있었다.

창녕함안보에서 양산 물문화회관으로 가는 길에 차도를 지나는 오르막 구간이 있었다. 서둘러 오르느라 급하게 기어변속을 하다가 뚜두둑 뭔가 튿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페달을 아무리 밟아도 헛돌기만 했다. 바로 옆에 차들이 쌩 하고 지나고 있던 터라 심장이 움찔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고 체인이 빠진 거라, 유튜브에서 내가 해당하는 케이스의 해결법을 찾아서 잘 조치할 수 있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포토스팟 중 하나. 한 폭의 액자 모형이다.

양산 물문화회관 인증센터에서 조금 가니 반가운 이름이 보였다. 부산 지하철 노선도에서만 보던 그 이름. 2호선의 종착지 호포. 이젠 정말 끝이 임박했구나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는 사람들만 자전거를 타고 내려갈 수 있는 즉사 코스. 자전거를 끌고 내려가는데도 상당한 가속력이 붙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도착하는 순간을 상상할 때에는 엄청난 감동이 물밀듯 밀려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인천의 출발지점에 비해 부산의 도착지점이 덜 꾸며진 것처럼 보여서 그런 걸까. 아무튼 종주를 끝낸 것에 대한 후련함보다는 퇴근 시간에 차도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것에 대한 염려가 더 컸다. 

8월 초

더보기

국토종주 인증서 수령

국토종주를 끝낸 그날에는 인증서 수령까지 한 달 넘게 걸릴 수 있다는 말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두 달 뒤에 왔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긴 길었다. 기억이 어느정도 희석된 탓일까? 인증서를 받고 나니 감회가 새롭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9월 8일 오늘

더보기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가 동력으로 여정을 마치고 석 달이 지난 오늘

 
올해 들어서 나는 마치 방전된 사람처럼, 그저 흘러가는 대로 흐느적거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과거의 나에서 정체되어 있는 현재를, 바쁘게 발전하는 사회에 견주면 도태되고 있는 흐름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걸 바꿔나갈 의지도, 의욕도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국토를 종주한다는 기획은,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마련한 탈출구였다.
 
그런데 나는 그토록 바랐던 자전거를 타는 와중에도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었다. 이따금씩 "남들은 이미 취업했거나 취준하고 있는데, 백수 주제에 국토종주 하고 싶다고 며칠씩이나 통째로 놀 자격이 있는 건가?" 라는 물음이 머리를 때렸다. 그런 나 자신이 한심하다 느껴질 즈음이면, 페달을 있는 힘껏 밟고는 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결여된 자신감이니 자격이니 하는 문제는 자취를 감추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내가 직면하는 전부였다. 그럴 때 비로소 해방감 비슷한 걸 느꼈다.
 
633km의 자전거 국토종주. 전반적으로 지독하게 지루한 여정이었다. 두 눈을 자극하는 풍경을 만끽하는 순간은 짧은 시간이었고, 그럴 때 귀를 즐겁게 하려고 듣던 노래의 효험은 오래 가지 못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두 무릎에서 느껴지는 저릿함, 손잡이를 고쳐 잡지 않으면 두 손에서 느껴지는 찌릿함은 그 지루함을 더욱 견디기 싫은 것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싫증이 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속에서 즐길 거리를 만들었다. 평균 속도 올리기라던지, 최고 속도 올리기라던지, 영화 "기생충"에 나온 송강호와 같은 편안한 승차감의 운전이라던지. 그러고 나면 총 거리가 얼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127km라는 오늘 하루의 몫을 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오늘 조금 덜했으면 내일 더하면 되고.
 
며칠 전 회사 대표님과 사담을 나누다가 자전거 이야기가 나왔고, 내가 올해 한 국토종주 이야기를 했다. 대표님께서도 그걸 하고 싶으셨는데 일 때문에 며칠 씩이나 시간을 낼 수는 없어서 못하고 있으시다고, 부럽다고 하셨다. 그리고 작은 칭찬을 덧붙이셨다. 그걸 도전할 생각을 하고, 실천하고, 완수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도전과 노력 끝에 다가오는 보상, 그리고 거기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 높은 가치를 두는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종주를 막 끝낸 시점의 나는 그 길 위에 아무런 깨달음이 없었다고 여겼다. 그러다 대표님의 말씀을 듣고 국토종주를 하던 때의 나를 돌아봤다. 자세히 보니 거기에 온갖 깨달음의 여지가 산재해 있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라는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 '인천에서 부산까지 간다'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 속에서 '나의 느낀점'와 '느낀점에 대한 나의 대응'은 간단명료하게 드러난다. 온갖 모호한 활동과 복잡다단한 과제들로 점철된 일상에 비해서, 나에 관한 발견을 하기 유리한 환경인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제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라는 걸 이해하기 쉽게 말할 수 있다

 

 "무엇을 골라야 잘 골랐다고 소문이 날까?" 마트에서 과자를 고를 때면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누군가로부터 듣고 난 이후부터인지, 어떤 밈을 접한 이후부터인지, 그 계기는 잘 모르겠지만 꽤 오랜 기간 동안 그랬다. 무얼 살지 고르는 순간의 선택 장애를 그런 말로 포장했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즐겨 쓰던 그 표현에는 '선택의 순간에, 나는 무엇을 많이 고려하는가?'에 관한 단서가 담겨 있다. 바로 소문이다. 선택의 결과는 나 스스로 만족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도 좋은 것이어야 한다. 내게 좋을 뿐만 아니라 남들 눈에도 좋아 보이는 선택이 어려운 경우, 나는 그 선택을 포기하거나 선택의 결과를 감추는 편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스파이 X 패밀리"의 한 장면. 개인적으로 본 받아 마땅한 태도.

 
 석달 전,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 그동안 잊고 지낸 과거 중 하나를 다시 떠올려 보게 됐다. 내가 중학생일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 어머니께 전화를 한 번 하시면서, 내가 한겨울인데도 겉옷 하나 걸치지 않고 등교하는 데 어떤 사정이 있는 거냐고 물어보셨다고 한다. 기억 났다. 그 시절에는 학교 나설 때마다 안 춥냐고, 패딩 사러 가자고 어머니께서 지겹도록 보채셨다. 하지만 나는 특유의 똥고집을 부리며 교복 자켓만 입고 등교했다. 그렇게 현관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가 잠을 확 깨워줬다. 도로로 나서면 칼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귀를 얼게 했다. 그런데 나는 그때 정말로 안 추웠다. 지금 견딜 만하니 이건 추위가 아니라 잠깐의 불편일 뿐이라 여겼다. 어차피 20분 안에 뜨끈한 교실에 도착하니까. 다만 외로웠다. 등교길에 겉옷을 걸치지 않은 사람이 나 말고도 있는지 살펴보곤 했는데, 그런 사람이 보이는 날은 드물었다. 무엇 하나도 밖에 걸쳐지지 않은 교복은 소속감의 상징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나만 벌거벗은 듯한 느낌을 줬다. 그럼에도 겉옷을 받쳐 입지 않은 것은 그게 그나마 차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노스페이스처럼 이름난 브랜드의 패딩을 입고 있었다. 충분히 따뜻하고 만듬새 있는 노브랜드 패딩을 입은 학생들도 가뭄에 콩 나듯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내 눈에 그들의 패딩은 왠지 초라해보였다. 내가 부모님께 "사달라!" 말할 수 있는 패딩 또한 그러했고, 만약 그걸 구매한다면 그건 무가치한 낭비였다. 어차피 그걸 입어도 외롭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계기는 분명히, 어느 선명한 기억에서 시작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의 꼬드김에 처음으로 다니게 된 종합 학원에서의 일이었다. 국어 수업이 끝나기 5분 전, 선생님께서는 가벼운 잡담을 시작하셨고 어쩌다가 운동화 브랜드 이야기가 나왔다. 하나 둘, 자기가 무슨 운동화를 신고 있는지 말을 했다. 대화에 끼지 못하고 있는 내가 신경이 쓰이셨는지, 국어 선생님은 내 운동화는 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대답을 못하고 다만 의자에 앉은 채 애꿎은 발만 뒤로 말아올릴 뿐이었다. 야속하게도 내 뒷자리는 비어 있지 않았고, 거기 앉은 친구가 내 운동화 발꿈치 부분에 적힌 낯선 문자들을 더듬어 가며 대변해줬다. "그게 뭐지?" 하는 반응과 오가는 말들. 선생님께서는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피며 싸해진 분위기를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셨고, "나댄다"라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었던 개구쟁이는 그때 이후로 영영 숨어버리고 말았다.
 
 그날부터 똑같은 대참사가 다시 일어날까 노심초사하며 지냈고, 그러다 보니 패딩 고르기를 포기했던 것이다. 운동화 대참사 당시 상황을 덜 참담하게 볼 여지는 있었다. "나는 브랜드에 별 관심이 없고, 쓸만하기만 하면 돼. 그렇게 부모님의 지출을 줄이고 용돈을 더 받아서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잖아." 하지만 그 얘기를 그 자리에서 친구들에게 할 깜냥도 없었거니와, 생각이 거기에 이를 만큼 내 사고 방식은 깊지도, 그렇다고 밝지도 않았다. 다만 이런 후회를 하며 이불킥을 할 뿐이었다. "아, 내가 그때 좀 더 유쾌하게 직접 운동화가 뭔지 이야기했다면 분위기가 오히려 괜찮았을 텐데." 당시 우리 집은 내가 느끼기에 딱히 부족할 것 없는 경제적 형편이었지만, 사는 동네에 비해서는 뒤쳐지는 편이었다. 나는 뒤쳐진 신발이 친구들에게 주목받은 그날에, 왠지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어두운 생각으로 이어졌다. "내가 친구들보다 후달리는구나, 급이 떨어지는구나." 경제적 형편의 차이를 인격의 차이로 확대 해석해버린 나는, 최대한 머니 게임을 피하기 시작했다. 괜히 서로의 경제적 지위를 비교하게 되는 상황을 말이다.
 
 그래도 신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시는 것일까? 머니 게임을 일찌감치 포기한 나는, 공부 게임에서 나름대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 유행하기 시작하던 카카오톡은 상상 속의 세계로 두고, 유행하던 게임들은 쉬는 시간에 친구 폰으로 두어 번 맛만 보면서, 학교에서의 모든 시간을 공부에 쏟았다. 그 결과 우리 지역 어른들은 최고의 대학 중 하나로 평가해주는 국립대를 선택할 기회를 얻고 기세 좋게 합격했다. 부모님께서 정말 많이 기뻐해주셨다. 명절에 만난 친척들은 입을 모아 잘 했다고 말씀해주셨고, 부모님은 당신의 친구들에게서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여기저기 소문낼 만한 결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소문났을 때 부끄럽지 않은 결과구나. 지난 3년간의 절제를 두고 보람을 느낀 동시에, 안심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꽃이 하나둘 피어오르는 경험이 낯설었던 탓일까, 아무런 자정 작용 없이 머릿속은 온통 꽃밭이 되어버렸던 것 같다. 현실적인 준비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이상만 높은 철부지로 3년을 보냈다. 대학 전부터 교수직을 바랐지만, 거기까지 가는 데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접어두었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우는 한국은행에 가면 좋겠다 생각해서 오픈 카톡방에 들어가 눈팅을 하고, 정석으로 통하는 K대 교재를 해당 대학 근처 복사집에 연락해서 배송 받아 놓고선, 수학의정석 집합 단원만큼도 공부하지 않았다. 다른 금융 공기업 A매치든 B매치든, 가기만 하면 충분히 소문날 만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길 가기 위해 피땀 흘려 공부하는 동기들을 지켜보기만 하고 나는 뛰어들지 않았다. 가오는 살지만, 돈은 많이 받지만,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품은 채 최소 1~2년이나 준비할 각오까지는 없었다.
 
 한 달쯤 전, 일과 행복의 융합이 가능할 것이라 판단하고 준비한, 개발자로서의 커리어가 시작됐다. 지금 다니고 있는 첫 직장은 주관적으로 볼 때 내게 과분한 곳이다. 내가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게끔, 내 능력의 200%가 아니라 110%만큼을 요구하는 과제를 줘서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게끔, 내가 일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게끔 배려해주신다. 아직까지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 지인들에게 취업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들 눈에 별로 좋지 않은 직장으로 보일 것이라는 짐작 때문이다. "대학 잘 갔다" 소리 듣던 때와 정반대로, "회사 잘 갔다" 소리는 좀처럼 나올 수 없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처음 들어본 회사 이름, 낮은 연봉, 적은 직원 수는 일반적으로 좋은 회사상과 상반된다. 커리어 측면에서 원치 않았던 직무, 사수 없는 환경, 협업 없는 솔플은 신입에게 이상적인 회사상과 상반된다. 내가 아무리 주관적인 만족도를 어필해도, 이런 점들을 지워보기 위한 몸부림으로 치부될 것 같다. "개발자 되겠다고 졸업도 늦게 하고 싸핀지 뭔지 한다고 1년 더 쓰더니 겨우 저 돈 받는 거야?" 혹은 "싸피 1학기 때는 상 많이 받길래 좋은 데 가려나 했는데 취업은 잘 못 했네..."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하고, 그게 표정에서 드러나면, 견디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일단은 정말 일부 사람들에게만 취업 소식을 공유했다. 비록 아무도 모르는 회사에서,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환경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에게만. 그리고 기꺼이 그걸 들여다 봐주리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만. 나는 행복한 채로 성장하는 길을, 지금처럼 계속 걸어갈 것이다. 아직 길의 끝에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이 선택이 잘 한 것인지 아닌지 따지는 일은 성급한 낭비다. 삶의 도처에는 머니 게임, 공부 게임뿐만 아니라 건강 게임, 행복 게임, 소통 게임 등 다양한 게임이 있고 매번 다른 게임에서 다른 과정과 결과를 만나지 않던가.
 
 대개 진학, 취업, 결혼, 자식 교육, 노후 준비 같은 것들은 통과 의례로 여겨진다. 그리고 '얼마나 잘 꾸며진 관문을 통과하는가'를 바탕으로 평가하는 것이 관례인 듯하다. 누가 봐도 예쁘고 멋진 관문을 통과하면 좋은 평가, 좋은 소문이 따라오는. 과연 그게 전부가 될 수 있을까? 관문을 지나는 건 정말 찰나의 순간일 뿐인데. 다른 모든 시간은 어떤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다시 방문을 열고 나오기까지 만나는, 방 안에서의 순간들일 것이다. 그 순간들은 감히 예측할 수도 없고, 그러므로 앞서 평가할 수도 없다. '좋은 문'이 무언가 좋은 걸 보장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곳이 '좋은 방'일 가능성을 높여주기만 한다. 그 문이 닫혔다고 해서 좋은 미래가 가로막히는 것은 분명 아닐 테다. 앞으로 나는 '좋은 시간을 얻기 위해 누구나 좋다고 말하는 문을 선택하는 것'에 골몰하기 보다는 '어떤 문을 선택하든 간에 좋은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소문이 나겠지. 삶의 방식과 태도를 잘 골랐다고. 좋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좋은 삶을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아래 글은 5년 전, 대학교 2학년이던 내가 글쓰기 교양 수업 때 작성한 글이다. 이 글을 5년 전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보낸 메시지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근거 하나 없는 이 메시지에 증거를 직접 더해주자.

더보기

네모 칸 안에 자신을 욱여넣는 청년들

2016***** 경제학부 2학년 황유성

 

 며칠 전 수능이 치러졌고, 매년 그랬듯 그날에는 한파가 찾아왔다. 수험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적자생존의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나름의 열정을 불태우며 달려왔을 터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또 다른 겨울일 뿐이다. 한때 출제자가 의도한 ‘정답 맞히기’ 전문가였던 청년들은, 이제 기업이 요구하는 ‘정답 되기’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비평문 「자소서는 어떻게 ‘자소설’이 되는가」(문강형준)가 지적했듯, 기업의 인재상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대학생활을 보내는 것이다. 기업은 ‘인간상’ 뿐만 아니라 ‘능력’까지 요구한다. 취업 잘 했다 소리 들으려고 몇 년을 공들여 필기와 면접, 발표, 토론 등 다양한 시험을 준비한다. 빈칸 한 줄 채워보자고 스펙을 만들고, 단칸방에서 지내며 김밥 한 줄로 배를 채운다. 대체 왜 청년들은 또 다른 수험생활을 계속하는가?

 대한민국 청년들 앞에는 표준화된 경로가 존재한다.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사회적 잣대로 점철된 보편적인 길 말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부모를 만나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 자식 교육, 노후 설계까지 완벽하다면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라고 평가받는다. 가정사적 배경을 제외한 모든 게 생애별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로 여겨진다. 적절한 시기에 우수한 성적으로 각각의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매 시기의 목표다. 이러한 경로는 경제개발을 위해 지어진 경부고속도로처럼 사회의 효율성을 끌어올린다.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에서 간편하고 신속하게 인재선발을 하기 위해 수능과 공채 절차가 만들어졌다. 또한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쉽고 빠르게 판단하려고 다양한 외적인 기준들이 통용되었다. 그리고 청년들은 보기 좋게 고속도로로 몰려, 막차 난간을 붙잡고 끌려가고서라도 종착지인 서울에 제때 도착하고자 한다.

 사회가 닦아놓은 단 하나의 길로 청년들이 쏠리는 것은 서울에 가는 것, 경부고속도로를 타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상을 주입받기 때문이다. 연필 쥐기도 불편한 어린 시절부터 ‘거지꼴 당하기 싫으면 공부해라’는 잔소리를 듣는다. 그 이후로 해는 바뀌는데 명절마다 듣게 되는 ‘출세’에 관한 덕담과 충고는 전혀 바뀌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 입시’라는 수요를 만족시키고자 학교는 모든 가용한 자원을 획일화된 커리큘럼에 쏟아붓고 학생들의 참여를 강제한다. 싫은 소리 한 번 내봐도 돌아오는 말은 대개 뻔하다. “대학에 못 가면 낙오자가 되는 거다. 근데 일단 대학에만 가면 다 할 수 있다.” 이런 외압을 못 이겨 공부만 하던 청소년들은 어느새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유일하게 안전하고 빠른 길이라고 믿게 된다. 그런 믿음이 가치관으로, 수험생활이 삶의 방식으로 고착되면서 청소년은 청년으로 성장한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청년들에게 없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주체적인 선택이다. 그들의 각 생애에 위치한 목적의식은 집단의 합리와 논리로 설정된 사회의 목표를 여과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N포 세대’라는 말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 건 그것이 기회비용이 아니라 일종의 박탈이기 때문이다. 청년이 주관을 따라 선택을 하고, 그것을 이행하면서 다른 가치들을 포기했다면 그만치 힘이 빠지지는 않았을 테다. 청년은 무기력에서 벗어나 사회 속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무한경쟁사회는 사람들이 경합적인 길로 몰려서 나타난 현상이며, 자신이 하필 정체가 심한 고속도로로 내몰린 건 사회적 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스스로 내린 선택의 부재 때문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사회가 설정한 통과의례를 마주할 때마다, 자신을 억제하면 ‘성공’이라는 틀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뒤처지지 않고 도착한 서울에서 ‘착실한 일꾼’이라는 훈장을 받으면 꽤 보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렸을 적 꿈이 ‘SCV’인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표준은 정답과는 다른 말이다. 그리고 외적인 요인이 자신의 삶을 결정지었다는 말은 너무 효율적인 단정이다.

이 글은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최훈 지음)의 16페이지 <성찰되지 않은 삶>를 읽고 쓴 글이다.
 
https://url.kr/k6Z3oX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 365 : 네이버 도서

네이버 도서 상세정보를 제공합니다.

search.shopping.naver.com

 

날마다 덕에 관해서, 그리고 다른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그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좋음이며,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
-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떠나가는 하루 일상 속 내가 살아낸 순간들을 붙잡는 일, 대개는 그것만으로 하루가 만족스러워지는 듯하다. 성찰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까지 말하는 소크라테스의 워딩은 아주 쎄 보인다. 사실 저 말은 "감옥에서 도망갈 수도 있는데 왜 도망가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한 이야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감옥에서 도망치고 숨어지내며 얻어낸 하루에 관한 이야기에는 덕이 없고, 이전에 자신이 누렸던 좋음 역시 없다는 것이다. 오늘 대표님과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은 어떤 이야기가 나를 혹하게 할 지 아주 잘 알고 계신 분이었다. 그 적절하디 적절한 권유를 나는 승낙했고, 오늘 자고 일어나면 이제 출근 있는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오늘 하루, 그때 그 순간을 돌아본다. 오늘 나는 백수 딱지 붙은 하루로부터 도망친 것이기도 하고, 책임과 돈이 오가는 사회의 부름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최종 선택을 내린 주체는 나였지만, 내가 갈 길의 결정자는 내가 맞았을까? 이미 나들목으로 빠졌으니, 이게 최선의 선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성찰하고 실천하는 수밖에.

 

깊이 있는 사고를 앞세워 삶을 이끌 때, 우리는 남의 삶의 아니라 '우리의 삶'을 살게 되므로, 성찰되지 않는 삶은 충분하지 않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16p)

 

 

이 글은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최훈 지음)의 15페이지 <나는 ㅇㅇ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읽고 쓴 글이다.
 
https://url.kr/k6Z3oX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 365 : 네이버 도서

네이버 도서 상세정보를 제공합니다.

search.shopping.naver.com

 

데카르트의 "나는 존재한다."에서 '나'는 '생각하는 나'이다. 전지전능한 악마에게 속고 있다고 의심해도, 의심하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하고 '생각하는 나'는 존재해야 한다는 뜻이다. (15p)

 

"모든 것을 의심하라" 말했던 데카르트의 명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페이지를 읽기 전에는 생각이란 게 존재의 조건이라서 중요하다는 말로 이해했다. 이 페이지를 읽고 난 후에는 생각, 의심 그 자체로 중요하다는 말로 이해된다. 빨간 알약이란 것이 없었을 시절부터 그는 인간이 매트릭스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했던 게 아닐까. 올들어 부쩍 많이 하는 생각인데 운동은 생각과 의심보다 더 중요한 듯하다. 건강에도 좋지만, 강도가 적당히 높은 운동에 정말 몰입했을 때 경험하게 되는 고양감은 매트릭스 세계에서도 구현 난이도가 최상이었을 듯하다. 몸을 쓰는 것에서 오는 자극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감각 체계가 아주 오래 전부터 발달해왔기 때문에 아주 원초적이면서 강도가 세다는 이야기를 어느 유튜브에서 본 것 같다. 쫓는 것이든 쫓기는 것이든 짐승과 함께 러닝하던 그 시절부터 말이다. 쫓지도 쫓기지도 않는 채로 탁 트인 능선을 오르고, 한적한 트레일을 따라 달리고, 잘 포장된 도로 위에서 페달을 밟다 보면, 이런 순간들 또한 존재의 이유로 매우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데카르트는 그런 순간들을 좋아했을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순간들이면 모든 의심이 말끔하게 사라진다.

 

하더그랏 트레일(출처: https://www.journeyera.com/hardergrat-trail/)

 

+ Recent posts